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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옥 (인문치료사)

아빠, 아빠가 돌아가신지 14년이 되어가네요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화해를 못한 걸 이제야 후회합니다. 아빠가 치매에 걸리셔서 요양원에 계실 때 가족들 중 저를 첫 번째로 못 알아보셨을 때가 내내 기억나곤 했어요. 애써 잊으려고도 했어요. 첫째 딸로써 아빠와 사는 내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아빠에게 따졌어요. 아빠가 북에서 혼자 내려오셔서 홀로 많이 외로우셨을 텐데 어릴 때의 저는 그런 이유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많이 미안하고 죄송해요. 이제야 아빠의 외로웠던 모습에 마음이 아파요.

아빠 저는 지금 마음에 대한 배움과 나눔을 하고 있어요. 가족들과의 마음아픔을 해결하고 어떻게 하면 서로 잘 지낼 수 있을까가 제 인생의 절실한 과제였기 때문이에요.

언젠가 비폭력대화 워크숍에서 나의 코어자칼(어린 시절에 형성된 나를 힘들게 하는 잘못된 문장, 핵심신념)을 찾는 시연을 했어요. 저를 늘 힘들게 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제가 세 살 때, 아빠 엄마 두 분은 어디론가 가시고 세 살의 저와 한 살인 남동생만 집 툇마루에 있었어요. 저 자신도 돌보기 힘든데 남동생이 많이 울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무서웠어요. 옆집 아주머니가 대문사이로 저를 쳐다보셨는데, 저는 두려워하는 모습을 들키는 게 자존심상해, 아무 일 없는 척 했어요. 사실은 너무 무서웠어요. 남동생을 돌봐야한다는 책임감까지 더 해져 식은땀이 났어요. 그때 제가 했던 생각은 ‘어른들은 아이를 낳기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잘 보이겠다. 하지만 너희들을 믿지 않겠다. 세상에서 나는 혼자다.’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아빠에게 대들었던 많은 일들, 또한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혼자 결정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어요. 

이런 생각들을 하며 두려움 속에 살았지만, 정말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제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를 찾아봤어요. 제가 원했던 것은 보호받음. 안전함. 정서적·신체적 안전, 솔직한 표현, 수용, 신뢰, 존재감, 사랑을 넘어 최종 욕구는 아름다움이었어요. 저에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모두가 자신의 태어난 모습 그대로 온전히 사는 거예요. 그 아름다움의 욕구를 욕구명상(내가 원하는 중요한 욕구를 오감으로 묵상하는 것)해 보았더니, 제가 막 태어난 그 순간이 보였어요. 제가 막 태어났는데, 아빠와 엄마가 사이좋게 웃으며 저를 내려다보고 계셨어요. 그 장면을 보고, 그 동안의 원망들이 치유 됐어요. 두 분의 표정을 보면서 제 마음속에서 떠오른 문장은 ‘아빠, 엄마가 그때는 사랑하셨었네요. 제가 태어난 것을 함께 기뻐하셨었네요.’였어요.

“아빠 저를 온전하게 살도록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빠 사실은 항상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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