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대중과 음악] <서편제>그 후…
[그때 그 대중과 음악] <서편제>그 후…
  • 김종현 (오랜 대중음악 애호가)
  • 승인 2020.06.0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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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오랜 대중음악 애호가)

세상이 변하여 영화 관객 천만 달성은 종종 들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지만 거의 30년 전에 백만 관객을 달성한 우리 영화 <서편제>는 지금 생각해도 경이로운 기록이다. 10만 관객 동원에 목마르던 시절에 100만 관객은 그간 외면하고 홀대해왔던 우리 문화에 내린 단비였다.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운 우리 가락을 잘 비비고 버무려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세상에 선을 보인 서편제는 우리 소리를 다시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그간 두텁게 쌓인 국악의 벽을 허무는 효과를 낳았다.

영화 속 음악(OST) 전체가 하나의 음반으로 발매된 한국 최초의 영화였는데 이런 일은 제작진과 출연진이 모두 어려서부터 남도자락에서 우리의 소리를 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원작자 이청준, 영화를 감독한 임권택과 배우 김명곤, 오정해 등이 두루 그런 분위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서편제는 전라도 남도 자락 섬진강을 기준으로 서쪽의 소리를 일컫는 말이다. 그 동쪽의 소리는 동편제다. 동편제는 서편제보다 남성적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표현하고자 하는 소리를 최대한 억제하며 장단 마디마디에도 잔 기교를 부리지 않아 늠름하고 기세 좋은 소리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서편제는 손과 발 얼굴 표정까지 강약을 두어 애절한 느낌을 준다. 세련된 발성과 몸 발림으로 동편제와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충청과 경기 소리까지 더하여 중고제도 있지만 지난 세기 초반 전승이 끊어졌다.

영화 막바지에 아버지 유봉은 눈먼 딸 송화에게 한마디의 유언을 남긴다. “동편제는 무겁고 맺음새가 분명하다면 서편제는 애절하고 정한이 많다고들 하지. 허지만 한을 넘어서게 되면 동편제도 없고 서편제도 없고 득음의 경지만 있을 뿐이다.”

영상 매체라는 예술이 그저 듣고 보는 것에 그치기 쉬운데 영화 <서편제>는 달랐다. 남도의 황톳빛 석양, 아름다운 섬진강 풍광을 배경으로 한이라는 주제를 풀어나가는 우리의 소리 판소리의 격조를 제대로 드러냈다. 한을 맺고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과정을 판소리와 엮어 애틋한 느낌을 극대화함으로써 관객들의 정한을 풀어냈다.

서양 문화에 종속 되다시피 한 그 시절 우리가 홀대하고 잊고 있었던 우리 문화가 이렇듯 아름답고 이렇듯 우리 삶과 정서에 깊이 닿아 있는지를 뼈저리게 경험케 했다. 굴곡 많은 격랑의 역사를 영화의 큰 줄거리로 하면서 해학과 익살, 맑은 슬픔까지 아름다운 소리 위에 담았다. 한 민족 역사에 겹겹이 쌓인 여러 갈래 주름 아래 감춰진 마음을 수다스럽지도 허세도 없이 담담하게 영상에 담아냈다.

서편제가 크게 흥행하고 난지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예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품위 있는 우리 전통 문화가 제자리 찾기에는 아직 우리 시각이 차갑고 무지하기만 하다. 일반화하기 어려운 일일지 모르나 음악을 듣는다는 내 주변의 몇 몇 분들로부터 전 세계에 우리 음악을 소개하기에는 낯부끄럽다는 소리까지 듣는 마당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국악 보다는 서양 음악이 주류로 등장하는 대한민국 유소년 시절의 음악 교육 탓이 컸지 않았을까.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은 우리 문화의 속살을 뽐냄이 없이 남겨주신 선조님들께 우리는 마땅히 고개 숙이고 감사해야 한다. <서편제>의 음악을 담당한 김수철 님의 대금곡을 들으면 우리의 악기 소리가 이렇게나 아름다운지 절로 감탄이 쏟아진다. 40년을 국악 발전을 위해 버텨온 그가 존경스럽다. 글 쓰는 내내 명창 고 박동진 선생이 생전에 우리에게 던져준 한마디가 귓전에 울려 퍼진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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