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보리도량’의 ‘우빤야’ 선사와의 일문일답

코로나19로 미뤄졌던 관내 사찰들의 봉축 법요식이 지난달 30일에 열렸다. 하지만 대다수 사찰들은 예년보다 간소하게 법요식을 진행했다.

춘천의 대표 사찰 중 한 곳인 삼운사는 점심 공양을 생략했다. 대신 떡과 음료수가 들어있는 패키지를 전달하며 사회적 거리두기에 신경을 썼다.

코로나19로 인해 1달동안 미뤄졌던 봉축 법요식이 열리고 있는 삼운사

《춘천사람들》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춘천 ‘보리도량’의 ‘우빤야’ 선사를 찾아갔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몇 가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 춘천 ‘보리도량’의 ‘우빤야’ 선사와의 일문일답

Q. 이유도 없이 비난 받은 적이 있다. 부처님께서는 “누군가 쓰레기를 건네면 버릴 것인가? 혹은 계속 안고 있으며 화를 낼 것인가?”라고 말씀하셨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불쑥 치솟는 화를 어찌할지 모르겠다.

A.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가 있다 하자. 전기가 없으면 멈춰버린다. 생각은 전기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것이다. 생각을 통해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을 어쩌지는 못한다. 마음은 본인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생각을 중단해야 한다. 늪에 빠진 사람이 허우적거리면 더 깊이 빠진다. 생각을 멈추고, 내 마음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의 마음 상태를 관찰하는 것이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Q.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를 보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떠올랐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수 있나? 불교에서도 ‘원왕생’을 말한다. ‘욕’과 ‘원’의 차이를 모르겠다.

A. 먼저 카잔카스키는 죽은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두렵지 않고, 자유롭다.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있기를 바란다. 즉, 먹기를 바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모든 생명은 먹는다고 말씀하셨다. 죽은 자의 묘비명에는 온갖 멋진 말이 다 쓰여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살기는 어렵다. 단지 닮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가진 것에서 자족할 수 있냐는 것이다. 더 많이 갖고 싶다는 마음은 불안감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핵심이다.

Q. 목표가 있는데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포기해야 하나?

A.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면 벗어야 한다. 우리는 짊어지지 않아야 할 많은 짐을 억지로 짊어지고, 짐에 깔려서 힘들어한다. 짐을 지고 있을 때는 무거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짐을 벗어던지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사실 모든 것이 길이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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