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라는 희한한 병을 앓고 있는 요즘. 투명한 5월의 햇살이 너무 아까워 잠깐의 외출을 시도했다. 마스크 단단히 쓰고 소독제 하나 가방에 챙겨서 넣고 발걸음도 가볍게 수채화를 만나러 가는 길은 왜 그리도 설레던지! 맑고 부드러운 바람과 지천으로 흩뿌려지는 꽃향기를 가슴 속까지 깊이 들이마시며 도착한 춘천 애니메이션 박물관 갤러리 툰 앞 광장에는 절정으로 치닫는 붓꽃 무리가 토해내는 청보랏빛 파도가 일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잃어버린 시간과는 상관없이 자연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잠시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어쩌면 우리는 바쁘고 치열한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또는 모르는 사이에 소중한 것들을 하찮게 여기거나 잊어버린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채화가 지은수     사진=김남순 시민기자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는 화가 지은수(48)는 스스로를 홍천 촌사람이라고 했다.

“나의 유년시절을 기억하며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가 뛰놀던 산촌 마을과 경이로운 자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 저편의 회상이 온통 아련하고 애잔하고… 그 속의 풍경들은 부서진 작은 편린들마저도 사뭇 아름답고 소중하기 그지없지요.”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마치고 10년이 넘는 긴 시간을 사회복지법인 노인 복지시설 사무국장으로 일을 해 온 그에게 작년, 2019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해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쁘고 행복한 해였고 동시에 가장 슬픈 해였어요. 작년에 퇴직을 했어요. 천직으로 알고 해오던 일을 멈추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많이 아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볍고 홀가분해졌다고 할까요? 돈은 많이 없지만…” 살짝 웃는 그의 모습은 아주 많이 편안해 보였다. 그는 어떻게 그림을 시작했을까?

“저는 미술 선생님이 꿈이었어요. 어릴 적부터 그리기를 좋아했거든요. 중학교 때부터 수채화를 했는데…, 시골 살림이라는 것이 그렇잖아요? 상황이나 여건 때문에 그 꿈은 그냥 꿈으로만 남아 있었지요. 다시 그림을 시작한 것은 사회복지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사회복지라는 그 일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더라고요. 은근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이기도 해요. 물론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요. 그래서 그리기 시작했지요,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그리고, 퇴근하고 나서 또 그리고, 그러다 보니까 하나, 둘 작품이 늘어났어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과 동료들의 칭찬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좋네!’ ‘너무 좋다!’라고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들이 저를 지금으로 이끌어준 힘입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자연, 사람, 예술의 반영(反影)으로부터 전해지는 편안한 마음의 쉼터와 같은 수채화라고 한다. 

“저는 수채화를 통해 부드러움 속의 강함, 정직함과 편안함, 그리고 따뜻함을 표현하고 자연이 내어주는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나만의 방식으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지은수 화가의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나를 보이다’이다. 안내 팸플릿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자연 속에서 나고 자라고 피어나는 소박한 꽃들과 식물들을 만나고 사랑하며 수채화 여행을 떠나는 작가 지은수, 그의 첫 개인 전시회는 어땠을지 궁금했다.

 “은사님과 몇몇 분들이 함께 화천에 있는 ‘동굴의 마을’을 구경하러 갔었어요. 정말 멋지고 아름답더라고요. 돌아보고 난 뒤에 은사님께서 여기서 전시회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고 ‘동굴의 마을’ 촌장님께서 그림을 한번 보자고 하셔서 보여드렸는데 보시고 나서 흔쾌히 진행해 보자고 하셨어요. 그렇게, 정말 우연히 개인전을 하게 됐지요. 감사한 일이지요.” 

 지은수 화가의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나를 보이다’이다. 안내 팸플릿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귀한 이들을 떠나보낸 힘든 겨울을 이겨내고 푸르게 피어나는 봄을 맞이하며 작가의 알몸을 드러내 보이듯 전람회를 마련하게 됨을 감사히 여기는 봄날입니다. 매일을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온 날들…, 그동안 마음으로 그려낸 작품들을 귀한 분들 앞에 수줍게 내어놓습니다. 부디 부족한 부분은 조금 조금 채워주시고 행복한 시간만 담아 가시기를 소망하며 그대의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 주신다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살면서 그는 직장 생활을 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일이 힘든 것이 아니라 잘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나에게 위안이 되어준 것은 그림과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친구들이었어요. 친구들은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출품할 작품들의 액자를 선물하기도 하고 첫 구매를 하기도 해요. 저를 후원해 주는 친구는 이번에도 전시 시작하자마자 첫 구매를 했어요. 이번 전시에서는 (가격을) 20% 다운시켜 걸었어요. 가져가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편안하게 가져가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유행의 흐름이나 사회적 트렌드에 매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싶다는 그는 코로나19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을 덧붙였다.

“이번 전시작 중에 ‘코로나의 봄’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 분홍빛 여린 꽃잎들 위로 처참하게 부러진 가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의 상황을, 그 부러진 가지 위로 솟는 여리고 작은 잎 하나는 그럼에도 우리가 놓지 말아야 할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 잘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생활을 전반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무려 670여 년 전, 전 유럽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던 페스트 이후 인류가 당면한 가장 당혹스러운 전염병이 될지도 모르겠다. 《페스트(1947년)》의 작가 카뮈는 자신의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페스트를 통해서 우리 모두가 고통스럽게 겪은 그 숨 막힐 듯한 상황과 우리가 살아낸 위협 받고 유배당하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동시에 나는 이 해석을 존재 전반에 대한 개념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에 점령당한 폐쇄된 도시에서 재앙에 대응하는 몇몇 집단이나 개인적인 군상들의 모습은 비록 시대적 상황이나 조건은 많이 다르지만 현 코로나19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사회적, 집단적 단면들과 닮아 있기도 하다. 우리는,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잘 이겨낼 것이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받을 줄 알고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우리는.

꽃인지 풀인지 모를 아주 작은 야생화, ‘파란여로’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화가 지은수. 그는 앞으로 야생화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기 시작할 듯하다. 

“올해 전시는 들꽃을 시작하기 위한 전 단계로 생각하고 있어요. 야생화 작품 전시를 꿈꾸고 있습니다. 들꽃 앞에 앉으면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아요, 하염없이 그대로 앉아 있고 싶거든요. 예쁘지 않은 꽃은 없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풀떼기로 보일 수도 있지만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면 정말 예쁘지 않은 꽃은 없어요.” 그렇다. 보는 대로 보이는 것이다. 자연은 속임이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어디서나 그대로의 모습이므로.

짧은 시간이 아쉬웠는데 그는 자리를 잠깐 비워도 괜찮다며 야생화 부잣집으로 함께 가보겠느냐고 물었다. 첫 전시회로 살가워진 인연, ‘동굴의 마을’ 촌장님 댁에 엄청난 야생화들이 살고 있다고 같이 가보자고 했다. 거절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행복한 마음으로 꽃 보러 출발하는 5월 어느 날의 오후는 아주 많이 행복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동행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체온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고 있었다.”(소설 《페스트》245페이지에서) 

지금 우리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함께 한다면 우리 모두가 ‘코로나의 봄’이 되어 세상 어떤 꽃보다도 찬란한 우리들의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경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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