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다혜 기자

아버지와 아들이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들은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뒤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수술실로 들어온 의사가 환자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니! 우리 아들이 어쩌다가…” 

어찌 된 일일까.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 번 생각해보자.

90년대 가수 ‘아쿠아(Aqua)’는 ‘카툰 히어로즈(Cartoon Heroes)’, ‘롤리팝(Lollipop)’ 같은 많은 히트곡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바비걸(Barbie Girl)’은 톡톡 튀는 멜로디와 특이한 콘셉트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비걸’은 90년대에 유행했던 ‘바비 인형’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노래다. 아쿠아의 뮤직비디오에선 주인공이 바비 인형처럼 말하고 움직인다.

가사를 유심히 살펴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난 바비나라에 사는 바비걸이에요. 당신은 나의 머리를 빗길 수 있고 어디서든 나의 옷을 벗길 수 있죠. 나는 금발의 빈보(Bimbo, 머리가 나쁘고 섹시한 여자를 가리키는 말)예요. 나는 당신의 인형이에요’ 

당시 이 노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여성을 폄하한 내용이다. 여성을 바비 인형에 빗대고 있으며 남성의 장난감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2018년에 대반전이 일어난다. 가수 에이바 맥스(Ava Max)는 아쿠아의 노래 ‘바비걸’을 리메이크 했다. 이 곡에서 ‘바비걸’은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세상에 외친다. ‘나는 너의 바비걸이 아냐(Not Your Barbie Girl)’. 이 외침이 리메이크 곡의 제목이다. 옛 노래와 새 노래의 멜로디는 비슷하지만 가사는 서로 양극단에서 대립한다.  

‘난 너의 바비걸이 아니야, 나도 나만의 세상이 있어. 내가 허락을 하지 않는 이상 만지지마. 내 몸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고. 난 너의 바비 인형이 아니야.’ 원곡을 리메이크 한 에이바 맥스는 ‘여성은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메시지로 여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쯤에서, 글머리에 썼던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모순처럼 비쳐지던 상황은 의사가 아들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너무나 절절한 현실로 뒤바뀐다. 

기자는 어릴 적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바비걸’을 보고 들으며 자랐다. 가사 내용이 뭔지도 모른 채 친구들과 ‘바비걸’을 부르고 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여성과 남성을 구별 짓고, 여성을 마음대로 대해도 무방한 존재로 여기는 문화에 젖어왔다. 

‘바비걸’이 칭송받는 문화에선 의사는 남성이어야 하고 여성 의사는 낯선 존재일 뿐이다. 성평등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이제는 ‘바비걸’과 단호히 결별하고 ‘나는 너의 바비걸이 아냐’라고 합창하며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

성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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