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나비소셜컴퍼니 CSV 디자인연구소장)

도로 위 자동차가 꽉 막혀있다. 앞으로 쌩쌩 달리려는 차들은 많은데, 신호등은 노란불에서 빨간불로 이미 바뀌었다. 그런데 이 빨간불이 녹색불로 바뀌지 않고 있다. 막힌 도로 위, 수많은 자동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살펴본다. 기다림이 길어지고,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화장실이 급해지는 사람, 배가 고픈 사람, 답답함에 우는 아기를 달래느라 진땀 빼는 부모들, 건강이 나빠 상황이 위급해질 수 있는 어르신, 집에서 기다릴 가족 생각에 여기저기 소란스런 통화들. 시동을 껐다 켰다하는 차들 속에서 창문을 여니 매연과 더위가, 문을 닫으면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켜야 한다. 그러다 연료마저 바닥이 나면 어쩔까? 차에서 내려 걷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부담스런 설정이라 해도 현실적으로 이상할 것은 전혀 없는 이야기다. 

빨간불 켜진 신호등 맨 앞이 아니어도 우리 모두는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공동체로 연결되어있다. 물론 신호등이 안 보이는 먼 곳에서는 왜 차가 가지 못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추측과 이야기를 던질 수도 있겠다. 당장 문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라면 조금 느긋하게 기다리거나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릴 여유도 만들 수 있겠다. 하지만 영영 녹색불로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은 모두가 같은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후위기를 곱씹어보며 문득 연상된 상황이다. 

얼마 전 춘천에서 만난 푸른아시아 오기출 사무총장은 ‘기후위기’는 쓰레기, 에너지, 환경문제를 넘어서 ‘사람’을 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미 지구상의 곳곳에서 기후난민과 이로 인한 금융난민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란다. 당장 우리 앞에 닥친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기엔 ‘지금부터라도’의 기회를 자꾸 놓치는 상황이라 맘이 조급해진다.

이번 《민들레》 129호는 ‘기후위기와 삶의 변화’를 주제로 곳곳의 기후위기대응 이야기들을 담아주었다. 여러 글을 아우르는 공통의 핵심 명제는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접근은 결국 ‘탈성장’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장구도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생산, 소득, 일자리 등의 중요한 삶의 축과 연결되어 있어서 이를 간과할 수 없다. 즉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을 개선하고, 에너지 전환 노력을 하는 것과 동시에 삶을 뒷받침하는 일자리와 소비구조, 소득문제와 사회안전망이 논의되고, 합의점을 찾아가야 한다는 아주 어려운 과제가 기후위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기후위기를 잘 아는 혹은 관련된 누군가가 풀어야하는 문제라고 한정하고 싶지 않다. 뭐라도 우리가 지금부터 할 수 있는 것을 실행에 옮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푸른아시아에서는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사막화 된 지역을 숲으로 변화시켜 자립기반을 만든 경험을 보여주며 커뮤니티 기반의 실행이 중요함을 이야기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생활방식을 바꿔가고,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통합적인 노력이 곳곳에서 연결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환경교육을 일상화하는 교사들의 모임은 학교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학교와 지역에서 생물종을 모니터링하며 애플리케이션에 담아내는 생태활동(네이터링 애플리케이션), 미세먼지 프리존을 만든 학생들이 물청소와 환기, 실내정화식물 등의 방법을 총동원하여 활동하고, 미세먼지 수치를 공개한다. 온라인 게임을 통해 숲 탐험과 미션 수행으로 환경감수성을 높이고, 주변의 생물종들을 캐릭터로 만들어 알리기도 한다. 학교와 가정에서 탄소라벨을 붙이며 에너지 절약 실천을 생활화한다. 지역에서 에너지 절약 노래를 만들어 마을행사에서 캠페인을 하고 주민들의 참여를 확장시키기도 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만나며 위기 앞 지혜로운 공동체의 행동을 기대해보게 된다. 물론, ‘~카더라’가 아닌 바로 우리 지역에서의 유쾌한 대응을 커뮤니티 활동으로 그렇게 작당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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