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환(춘천 녹색평론 독자모임회원)

무엇엔가 ‘한국판’이란 말만 붙으면 의심 바이러스가 코로나19처럼 금세 퍼진다. ‘민주주의’에 저 말이 붙었을 때, 얼마나 시대가 어두워졌는지 혹독하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 정책에 그린뉴딜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지시했다는 뉴스를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뉴딜’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녹색뉴딜’의 화두는 ‘녹색’이 아니라 ‘성장’이었다. 결과적으로, 성장이 녹색을 삼켜 버렸고, 그 부산물로 금강과 낙동강에 녹조라떼를 가득 남겼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뉴딜도, “최근엔 그린뉴딜이 화두라며 한국판 뉴딜에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데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협의해 그린뉴딜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지 확인해서 서면으로 보고해 달라”고 지시했다(http://www.mediatoday.co.kr)는 기사에서 보듯이 ‘그린’이 아니라 ‘일자리’에 방점이 찍혀 있어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이건 주객이 전도된, 넓은 의미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녹색뉴딜’과 별반 차이가 없는 정책일 것이다.

그린뉴딜은 ‘한국적’ 상황에서 어떤 정치 단체가 그리 만만하게 다룰 정책이 아니다. 그린뉴딜이 지향하는 목표인 ‘온실가스 감축, 일자리 창출, 경제적 안정, 차별 금지와 형평성’이 무척 매력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그걸 추진하기 위해서는 단지 정부가 예산을 늘리고 베푸는 방식만이 아니라 온갖 규제와 금지, 그리고 추가 세금 징수 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단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정책이 절대로 될 수 없다. 제대로 이것을 실행하려다가는 엄청난 반대 세력들의 저항에 부딪혀 여러 가지 난관을 겪어야 할 것이고, 실업 대란과 낮은 경제 성장률 등으로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지금 그린뉴딜이 정책과제로 나왔을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래한 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가 저지른 자연환경 파괴와 맞닿게 되고, 그 해결책으로 최근 ‘그린 뉴딜’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 바이러스 위기를 잘 극복해 가고 있는 우리나라가 그린뉴딜도 세계적 모범국으로 잘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걸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그 대응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 금년 5월 17일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에너지전환지수2020’의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 32 개 국 중에 31 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친환경 에너지 전환 준비가 덜 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일인당 탄소 배출량 세계 6위,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7 위의 기후 악당 국가이다. 국민들의 ‘그린’에 대한 의지도 높지 않고, 산업 구조도 별로 친환경적이지 않다. 

단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제대로 된 그린뉴딜을 실행하려면, 규제와 금지와 증세 등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시민들의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국민적인 합의라는 토대 없이 실행하는 그린뉴딜은 들어서는 정부마다 단기적인 성과와 여론몰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또 하나의 녹색 괴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답답해서 이런 싱거운 상상도 해 봤다. 우리나라에 기후위기대책본부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같은 이가 있어서 현재 지구에 닥친 기후 위기가 어떤 정도인지, 우리나라가 온실가스를 얼마만큼 어떻게 배출하고 있고, 그걸 줄이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조목조목 차분하게 설득해 주는 이가 있었으면,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행동 수칙을 대부분의 시민들이 잘 지켜 주었으면, 좋겠다, 라고. 

정은경이나 툰베리 같은 ‘영웅’에 의해서든 기후 위기 현장 곳곳에서 고된 싸움을 하고 있는 숱한 보통 사람들에 의해서든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의 변화가 함께해야, 그린뉴딜은 가까스로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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