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최근 몇 년 사이 춘천에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천 단위의 낯선 세대들이 모여 동네를 이루어 산다. 새로 분양한 아파트단지는 여러 개의 놀이터, 공원, 운동시설, 도서관, 수영장, 벤치, 정자, 산책코스까지 갖추고 있다. 아름다운 단지 안에서 행복이 퐁퐁 솟아날 것 같다. 내가 아이들과 생활하는 어린이집이 있는 단지는 조경에 특별한 정성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계절마다 제철 꽃이 피고 지며 열매를 맺는다. 요즘은 현관 앞 보리수가 빨갛게 익어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작정하고 찾아간 공원에서나 볼 수 있을 다양한 나무들을 아이들은 산책하며 매일 만난다. 그 아름다운 단지엔 미니 공원도 있다. 공원 가운데 작은 연못이 있고, 꽃창포가 여름을 알린다. 공원 안에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또한 아이들과 교사들에게는 선물이다. 자동차가 차단되고, 꽃과 나무, 물, 곤충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에 우리는 감사하고 있다.

한 달 전 6, 7세 유아반 아이들이 교사와 함께 공원 안 휴식공간에 자리를 깔고 사포질을 시작했다. 나무토막을 사포질해서 놀잇감으로 만드는 작업 또한 아이들에게는 의미 있는 놀이다. 사포질을 끝낸 두 아이가 뛰어가다 한 아이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며 다치는 사고가 났다. 엄마와 함께 아이를 응급실로 데려갔고 치료가 잘 되어 상처도 다 아물었다. 치료를 마친 아이가 한 이야기는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아줌마가 있었어요. 아기랑 유모차가 있었어요. 유모차 때문에 넘어졌는데 아줌마가 보고 그냥 가버렸어요.” 아마도 유모차에 걸려 넘어져 피가 나는 아이의 모습에 아기엄마도 많이 놀랐을 듯싶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냥 자리를 뜨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가까이에 교사들이 있어 빠르게 응급처치를 했지만 피가 나는 상황에 서둘러 자리를 피한 어른을 본 아이의 기억은 아프게 남아있다.

지난주 놀이터에 나갔던 아이 한명이 보이지 않았다. 관심 있는 것 한가지에만 집중하면 다른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달려가는 특징이 있는 아이라 그 아이가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찾아 바꿔가며 바깥놀이를 해 오던 터였다. 잠깐 사이 아이를 놓친 교사들은 모두 사색이 되어 아이를 찾았지만 넓고 넓은 단지 안에서 아이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천만 다행히도 단지 내 주민께서 아이를 관리사무소에 데려다 주셨고, 입주자 카페의 안내를 본 다른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온라인에서 천 단위 세대가 이웃으로 연결되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하루 한 시간만 어린이집에서 지내고 가는 그 아이의 어머니께 그날 일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놀랐을 교사들을 염려하시며, 바깥놀이 시간이 아닌 실내놀이 시간에 아이를 데려 오겠다고 말씀하시며 아이를 데려가셨다.

우리 모두 편리를 위해 진화한 환경에 살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대단위 아파트단지는 오랜 세월 가꿔온 동네 못지않게 편의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제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역할이 남았다. 낯섦은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처럼 이웃 간에 벽으로 서 있다. 시절이 하 수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험한 일들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니 가족 외의 사람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아파트단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웃이 되어 서로를 지켜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매일 바깥놀이를 나가는 교사들은 본인의 동네에서 지낼 때 보다 더 자주, 더 친절하게, 만나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지나가는 어르신, 나무를 돌보는 관리실 직원들, 청소하시는 분,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는 아기… “안녕하세요? 날씨가 너무 덥네요. 안녕~” 그리고 기대한다. 

낯선 이 단지 안에서 마음을 건네는 인사로 벽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는 이웃 안에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기를.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절대 나 혼자, 혹은 우리가족끼리 만들 수 없다. 손잡은 이웃 안에서 비로소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만들어지며 그 질은 우리에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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