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다혜 기자

코로나19로 학생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오가는 시민들도 줄어든 강원대학교 후문 거리에 지난달 15일 ‘보행자 우선도로’가 첫선을 보였다. 생긴 지 보름이 넘은 이 도로는 코로나19로 위축된 대학상권에 활력을 불어넣을 의도로 기획됐다. 불법 주·정차로 어수선했던 거리가 쾌적하고 싱그러운 대학 거리로 변모하리라는 기대가 설계도에 담겨 있었다.  

보행자 우선도로가 애초 취지대로 기능했다면, 백령로 138번길 일대, 강원대 후문 거리는 지금 한쪽으로만 차량 진입이 가능한 일방통행 도로여야 한다. 보행자를 가로막는 주·정차 차량도 사라져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보름이 지난 후에도 강원대 후문 보행자 우선도로에는 여전히 주·정차 차량들이 그득하다. ‘진입금지’라고 써놓은 교통안내판이 무색하게 차량들은 양방통행에 거리낌이 없다. 도로는 새로 말끔하게 포장했는데, 아무리 봐도 ‘보행자 우선도로’를 찾을 길이 없다.

상가번영회는 “춘천 명동거리처럼 아예 차량이 보행자 도로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을 예정이었지만 식자재 등을 운반해야 하는 음식점도 있어 일방통행으로 조율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브랜드 음식점의 상호가 적혀있는 차량들도 일반 차량들과 섞여 여기저기 주차해 있다. 

상가번영회는 보행자 우선도로를 만들기 몇 달 전부터 현수막을 내걸고, 대학생과 주민들에게 도로 조성 취지를 홍보하며 협조를 구했다. 그럼에도 ‘진입금지’ 표지판이 버젓이 걸려있는 도로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진입하는 차량들을 보고 있자니 미운 감정과 함께 허탈감마저 솟아났다.  

‘보행자 우선도로’가 조성된 지 이제 겨우 보름 남짓 지났으니, 아직은 홍보기간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벌점 부과나 차량 견인 같은 강제 수단을 쓰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보행자 우선도로’의 조성 취지와 존재 이유 만큼은 다시금 진지하게 되새겨야 한다. 

명색이 ‘보행자가 우선인 도로’에서 경적을 울려대며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오는 차량, 음식점 입구에 세워두어 손님의 출입을 가로막는 차량들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자칫 ‘사이비 보행자 우선도로’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행자 편의와 지역상권 살리기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사업이 서로 눈살 찌푸리며 잘잘못을 따지는 지경으로 전락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다른 지역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는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보행자 우선도로를 오가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민원이 계속 제기되자 지난해 시·구 합동으로 강력한 단속을 펼쳤다. 네덜란드 일부 지역에선 보행자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도록 인도와 차도의 경계를 아예 없앴다. 이런 도로에 진입한 운전자들은 보행자들의 움직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거북이 운행을 해야 한다. 일본은 보도 양 가장자리를 지그재그로 돌출시켜 차량의 과속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보행자는 차량이 오든 말든 아랑곳 하지 않고, 차량은 보행자가 무서워 엉금엉금 기어가는 도로, 그런 도로가 ‘보행자 우선도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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