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영 (시인)

너무도 황망한 부음. 《녹색평론》 발행인이자 이 땅에 생태문명의 뿌리를 심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던 참 스승 중의 한 분인 김종철 선생께서 지난 주 너무도 갑작스럽게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글에 앞서 故 김종철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30년 넘게 시를 써오면서 <갠지스>라는 시를 두 편 썼다. 오늘은 그 두 편의 <갠지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편의상 <갠지스 1>과 <갠지스 2>로 하겠다.

<갠지스 1>을 쓴 것은 대우 다닐 때 그러니까 27년 전쯤의 일이다. 인도 바라나시에 갔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일정은 회사 비즈니스에 맞춰져 있었지만 그래도 인도에 간 김에 혼자 잠깐 시간을 내어 여행한 적이 있다. 말로만 듣던 바라나시의 풍경은, 갠지스의 풍경은 무덤덤했다.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잠시 스쳐 가는 여행자요 이방인이었으므로 갠지스는 제 속내를 결코 보여주질 않았던 것일 게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얼마나 덧없는 환상이었던가. 결국 나는 그저 담담하게 그 무덤덤한 갠지스의 표정을 스케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것이 바로 졸시, <갠지스 1>이다. 번거롭더라도 전문을 옮긴다.

“바라나시로 간다 갠지스가 흐른다는, 그랬다 시장을 끼고 돌다 어느새 길을 잃었다 싶으면 트랜지스터 회로와 같던 골목들은 스스로 강의 기슭에 닿았다 하늘에서, 땅에서, 물에서, 뼈를 드러낸 생들, 그들이 토해낸 배설물들, 주검까지도, 다만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어쩌면 태초에 저 반죽이 있었으리라 잿빛 연기 너머 시체 한 구가 던져지고, 연꽃이 뿌려지고, 어디서 날아들었을까 까마귀들이 카론인 양 물길을 내고 까악 까악, 이국의 표정을 좇아온 까만 얼굴의 아이가 꽃을 건넨다 1달러짜리 종이꽃이 떠가면서 붉어지는 강”

<갠지스 2>를 쓴 것은 훨씬 전의 일인데, 그러니까 1987년 무렵이겠다. 류시화의 《크리슈나무르티》를 처음 읽었던 때였고, 인도에 대한 환상만 가득했던 그런 때였다. 인도를 가본 적이 없었어도, 인도를 아는 것처럼 생각한 때였다. 갠지스를 가보지 않았어도 갠지스를 안다고 생각한 그런 때였다. 그런 때 쓴 시가 바로 <갠지스 2>다. 역시 전문을 옮긴다.

“길 잃은 소와 날개 다친 까마귀, 거지와 성자, 그리고 산 자와 죽은 자, 그 모두 갠지스로 몰려갔지. 지상의 모든 여행을 마치고 이제는 돌아가기 위해 모여든 무리들, 그들을 품어 흐르는 강 - 그것이 갠지스야.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갠지스와 같이 되었으면. 이제 비로소 서로에게 깃들어 흐르는…”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그런 시를 쓰는 순간이 있다. 졸시, <갠지스 2>가 그런 경우다. 읽어보았으니 알겠지만 있어야 할 갠지스는 정작 없고 싸구려 감상만 남았다. 마땅히 폐기처분해야 한다. 물론 아직도 나는 인도를 모른다.

졸시 두 편을 보았지만 사실 두 편 어느 곳에도 갠지스는 없다. 내 삶의 한계를 들여다보고 싶을 때, 내 시의 한계를 들여다보고 싶을 때, 그럴 때 나는 이 두 편의 <갠지스>를 떠올리곤 한다.

문학은 특히 시는 시인 자신의 삶과 체험을 넘어서야 하는데, 문제는 자신의 삶과 체험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졸시 <갠지스 1>처럼 자신의 삶과 체험에 머물고 있는 작품을 만날 때면 안타깝고, <갠지스 2>처럼 삶을 초월하고 체험을 초월한 듯한, 맥락이 사라진 추상의 문장들로 그럴싸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문학 작품들을 만날 때면 허무하다.

무릎이 깨지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기고 또 기어서 마침내 자신의 삶과 체험을 넘어가야 한다. 문학은 초월이 아니라 그렇게 포월(匍越)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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