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탄리 숲지기)

조금 늦게 오르는 산 풀밭에 축복 같은 햇살이 퍼져 수만 수백만의 은 이슬 금 이슬들이 다투어 풀잎 위에서 뛰어내리느라 풀밭은 눈이 부신 보석 밭이다. 넋을 잃고 있다 보면 그러나 이 찬란함도 잠시, 안타깝게도 살랑 바람이 이슬들의 뒤를 떠미느라 풀잎을 뒤집어 환상이었듯 사라지고 날개 젖은 귀뚜라미 여치들은 잠시 발성 연습만 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이런 천국의 풍경을 수시로 연출하지만 사람들은 무정하고 무감각하다. 이런 아침 시(詩) 밭을 걷는, 이 위대한 자연의 풍경화 속을 걷는 나는 무슨 복을 타고난 것일까?

 다들 생업부터 챙기느라 부산한 아침에 몸과 마음부터 산에 가 정갈히 다듬고 오는 이런 금쪽같은 여유는 아무나 못 누리는 것이리라. 그러나 건강과 사람의 삶의 질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당연한 자연 속의 생활이고 평범한 일이어야 하건만 사람들은 일에 중독돼 있고, 우선이며 도시의 편리함 때문에 무관심하다. 몰려 살아 싸우듯 살고 공해와 환경오염으로 건강을 잃는 것도 잊고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산다. 

그렇게 일을 항상 우선시하던 일평생은 세월 간 뒤에 뭐가 남을까? 막 쓰고 버리고 파 헤쳐 버리는 육신과 영혼의 집이 파괴된 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름으로 가는 요즘 조금 있으면 산속엔 여러 버섯들의 경연장이 될 것이다. 잠깐 산을 돌아 내려오면 배낭엔 싸리버섯 갓 버섯들이 묵직할 것이다. 버섯이 품은 산의 향기와 흙의 정기가 주는  맛도 일품이지만 피어있는 버섯들의 아름다움도 꽃 못지않은데 다양한 컬러와 모양을 보면 사람들의 미술이나 예술 쪽의 창작품은 다 자연에서 모티브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산은 봄, 여름, 가을이 늘 꽃밭이며 천국의 그림이며 깨달음의 장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 꽃이 피고 지는지 모르고 산다. 산에 진달래나 벚꽃이 만발하면 그저 봄이구나, 들국화를 보면 가을이구나 하며 시간이 빠르고 허망하다 한탄만 할 뿐 자연 속에서 배우는 삶의 의미와 지혜를 깨닫지 못한다.

꽃의 이름마저 묻지 않는다. 그러나 여름을 장식하는 동자꽃 하나만 보더라도 그 생명의 가치가 무한하다. 고상한 미소로 여름을 타거나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외로운 사람의 슬픔을 위로한다. 은은한 향기는 격조가 높아 세상의 냄새 나는 곳을 중화시켜주는가 하면 꽃잎으로 흉한 곳을 가려주기도 한다. 꽃 자체로도 두통, 열 감기, 폐렴, 기관지염, 위염, 장염, 종기에 항균작용을 하는 약성을 갖고 있어 가을의 꽃차로 자연의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그뿐인가 품어 기르고 먹여 기르는 곤충과 작은 생물들이 수도 없는데 벌과 나비 등이 그러하다. 꽃 자체가 집인 곤충도 수가 상당하다. 이런 줄도 모르고 우리는 그저 꽃이구나 하며 무심히 지나치거나 잠시 발걸음을 멈출 뿐 꽃의 의미와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역시 자연의 일원인 사람이 어찌 고향의 풍경과 정경을 잊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중에서 뭐니 뭐니 해도 우리가 꽃 한 포기 풀한 포기에서 얻는 심적 위안과 치유 효과는 가치를 따질 수 없다. 꽃과 풀이 그러한데 우리는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하고 사는 것일까? 눈만 뜨면 자연 파괴를 일삼는 인간들을 보면 어느 땐 저 꽃 한 줄기 풀 한 포기 보다 못하고 지구에 해만 끼치는구나 싶다. 

이제 조금 있으면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술 취해 고함지르는 듯한 계절이 오고 어느새 벌개미취들과 쑥부쟁이들이 바람에 댄싱 리듬을 탈것이다. 뒤이어 곧 가을 파티에 나갈 리허설이 뒤따를 것이다. 칠월. 올여름과 가을꽃들은 사람들의 가슴에도 피어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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