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인물도

이상은(813~858)은 중국 만당 시대의 대표 시인으로 수사주의(修辭主義) 문학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사랑을 주제로 한 제목 없는(無題) 시들이 유명하다. 중국 문학에서 사랑은 시가의 영원한 주제여서 중국 최초의 시가 총집인 《시경》에서도 보인다. 그러나 사랑에 관한 시는 만당에 이르러 이상은에서 꽃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상은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를 따라 절강으로 갔지만, 아버지가 9살 때 세상을 떠나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나 17살 때 평민이던 그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산 절도사 영호초(令狐楚)가 막부의 관료로 등용하고 자신의 아들과 공부하게 했다. 이러던 25살 때 이상은은 진사에 급제하게 된다. 그러나 다음 해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다른 절도사 왕무원(王武元)이 사위를 삼았는데, 이게 불행의 시작이 되었다. 두 집안이 파벌을 이루어 대립하는 사이인지라, 이부고시(吏部考試)에 합격했으나 영호초 집안이 배은망덕하다며 반대해 제명됐다. 그로부터 1년 후 예부고시(禮部考試)를 통과해 9품의 미관말직으로 일생을 보낸다. 당쟁의 와중에서 50도 채 넘기지 못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의 시는 현재까지 600여 수가 전하는데, 불우한 삶에 대한 반영, 거취에 대한 번민, 우수(憂愁) 등을 주제로 하지만, 수식을 최대한 동원해 화려한 연애시의 전형으로 창조한 일명 서곤체(西崑體)가 압권이다. 그의 시는 난해하기로도 유명하다. 제목 없는(무제) 애정시 한 대목을 보자. ‘만나기도 어렵다만 헤어지는 것 또한 어렵구나. 봄바람이 힘을 잃을 때 온갖 꽃들도 지는구나(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시 전부는 몽환적이고 읽다 보면 배회의 느낌이 든다. ‘비 내리는 밤 북녘의 아내에게(夜雨寄北)’ 보내는 시 한 편 더 볼까나? ‘돌아올 날 언제냐고 물었더랬지. 나는 지금 파산에서 밤비가 가을 연못에 넘치는 걸 보고 있소. 언제 둘이 서창에서 등잔 심지 돋워가며 밤새, 파산의 비 얘기를 할 수 있으려나? (君問歸期未有期 巴山夜雨漲秋池 何當共翦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

그는 《잡찬(雜纂)》』의 ‘살풍경(殺風景)’ 시리즈에서 눈살 찌푸려지는 꼴불견을 나열했는데, 책마다 내용이 조금씩 다른데 그 변형된 내용이 열댓 가지나 되고 후세 사람들이 덧붙이기도 했다니, 우리 시대 살풍경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므로 만나 서로 부대끼며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더불어 사회를 이루는 것인데, 코로나로 만나는 걸 두려워하는 고립무원의 삶을 강요 당하니 이것보다 더한 살풍경이 어디 있겠는가. 그나마 이 강연도 끝났으니 목요일 저녁마다 재미나던 풍경 하나도 사라지는구나.

김진석(후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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