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오랜 대중음악 애호가)
김종현(오랜 대중음악 애호가)

1980년대 초반 신문 지상과 방송 보도에 차세대 음반이 탄생 한다면서 떠들썩했던 기억이 있는데 6~7년 후에 그 실체와 마주했을 때 첨단 기술의 동그란 음반은 CD였다. 비싼 가격에 놀랐지만 무지개 빛이 아롱거리고 자그마한 것이 신기했다. 귀가 번쩍 뜨일 만큼 깨끗하고 빈틈없는 소리에 놀라고 깜찍한 모양에 매료됐다. 그러나 그도 잠시 지금껏 모아오던 LP를 CD로 교체해야 할지 잘 쓰던 턴테이블이나 주변기기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에 한동안 고민했다.

CD가 본격적으로 나오면서 중고 LP가 시중에 넘쳐나 지금 인터넷이나 시중에서 요즘 고가로 팔리는 LP들도 당시에는 불과 단돈 1천 원에 청계천에서 사고 팔리는 일이 허다했다. LP로 들었던 음악이 다시금 CD로 나와서 음악을 즐겨듣는 나로서는 LP도 사야하고 CD도 사야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CD와 LP가 공존하기를 4~5년. LP에서 CD로 갈아탄 애호가들로부터 소리 없는 항변이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CD의 소리는 맑고 깨끗하며 취급하기에 두말할 나위 없이 좋지만 뭔가 불만이 있다고 토로했다. 말로 똑 부러지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LP에 비해서 소리가 차갑다거나 깊고 풍부한 맛이 LP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는 식의 불만이었다. 하지만 CD를 개발하고 상용화 시킨 제작자들은 애청자들의 제안을 경청해 보다 나은 음질을 개발해내 지금은 LP보다 더 좋은 소리로 CD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CD와 LP는 모양부터 확연한 차이가 난다. 종이포장으로 만들어진 LP, 합성수지 포장의 CD. 하얀 알맹이의 CD, 검은 알맹이의 LP. 몸무게가 가벼운 CD, 무거운 LP. 턴테이블의 바늘로 소리 나는 LP, 전자 레이저 빔으로 소리를 내는 CD. 똑같은 음악을 상반된 환경에서 비교하며 듣노라면 재미가 난다.

LP는 CD가 나오기 전 “레코드”(RECORD)라는 말이나 “판”이라는 말로 통용됐다. 우리나라에서는 LP라는 단어는 CD가 나오면서 사용하게 됐는데 원래의 명칭이라면 Vinyl(비닐)과 DISK(디스크)라고 한다. 줄임말 LP를 풀어서 다 쓰면 LONG PLAY이고, CD는 COMPACT DISC이다. LP 이전에 SP(STANDARD PLAY) 음반도 있었는데 앞뒤로 한 두 곡정도 밖에 노래를 실을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LP다. SP 음반이 곡수에 한정이 있고 LP는 LONG PLAY라는 말이 실감 나도록 40~60분정도는 들을 수 있었으니 당시엔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CD를 처음으로 개발한 네델란드 필립스에서는 CD에 들어갈 음악의 러닝 타임에 대해 고민하게 됐는데 당시 최고의 독일 교향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카라얀에게 자문을 구했다. 수십 년 세계 최고 교향악단을 이끌던 노구의 지휘자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전곡을 다 담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필립스에 요청 했고 필립스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베토벤 9번 교향곡 러닝 타임은 약 70분 전후인데 우리가 듣고 있는 CD의 러닝 타임은 이때 정해진 것이다. 

앞만 보며 달려가는 세상에 오래전 기억으로 낡은 LP를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듣노라면  초, 중, 고교시절 생각에 우쭐해진다. 당시만 해도 심야프로는 보통 밤 12시면 종방인데 자정을 넘기는 음악 방송을 다 듣고 잔다는 건 소년에겐 큰 산을 넘는 도전이고 자랑거리였다. 밤마다 끼고 살던 손바닥만 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매혹적인 선율들, 조그마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와 한줄기 빛과도 같이 어린 마음을 꿈꾸게 만들었던 음악들을 여태껏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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