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미 (양구 방산중 교사)

사진 한 장을 앞에 두었다. 캄캄한 어둠이 내린 세상에 불꽃이 날듯 황홀한 반짝임으로 하늘에 가득 담긴 별이다. 웅장한 산 위에, 흐르듯 유연한 자태로 서 있는 은하수를 담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의 설렘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 한 장. 이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 것이며, 이 사진을 앞에 두고 얼마나 뿌듯하고 좋았을까.

들에 핀 꽃을 좆는 사람들 그리고 하늘의 별을 좆는 사람들. 자신들의 영혼을 움직이게 하는 것들을 만난 사람들은 사진으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춤으로 그것들을 끊임없이 표현하고 싶어  한다. 혼자만 알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 놀라운 감동을,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거겠지. 별을 노래한 작곡가가 누가 있었더라 생각하다가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를 떠올렸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여행지에서 만난 지인에게 천문학을 소개받아 하늘의 별들을 공부하게 되어 그것을 음악으로 만들어 들려주고 싶어 했던 작곡가. 그의 오케스트라 모음곡 <행성>.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운동을 하는 9개의 행성. 수,금,지,화,목,토,천,해,명 이라고 학창시절 열심히 외웠던 그 행성들을 그려낸 음악으로 7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악장은 화성-전쟁을 가져오는 자, 2악장은 금성-평화를 가져오는 자, 3악장은 수성-날개달린 신의 전령사, 4악장은 목성-기쁨을 가져오는 자, 5악장은 토성-옛시대를 가져오는 자, 6악장은 천왕성-마법사, 7악장은 해왕성-신비로운 자라는 부제를 가진다. 9개의 행성 중 지구가 빠져있고, 명왕성이 빠졌다. 당시에는 아직 명왕성이 발견되지 않아 작곡가의 작품에 포함되지 못했는데 지금은 태양계의 행성중 명왕성이 제외 되어 8개의 행성으로 분류되었으니 그 또한 신기하고 놀랍다. 이 음악은 아주 장엄하고 리듬감 있으며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의 곡인 화성, 수성, 목성과 명상적이면서 몽환적이고 신비스런 천체의 느낌을 담아 연주되는 금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으로 이분되어 있다. 하늘. 너르고 신비로운 공간을 관현악의 색채로 그림 그리듯 만들어 놓은 그의 음악. 옛 시대를 가져오는 자라는 부제를 가진 토성은 노년의 신이라고도 하는데 나이 들어가는 노년의 느낌을 쇠락이 아닌 완성됨의 미학으로 그려냈다는 평이 있으니 중년 이후의 삶을 지나면서 한 번 들어봄 직하겠다. 게다가 작곡가는 그 광활한 대기의 깊고 깊은 느낌을 바다속처럼 그리고 싶었는지 마지막 7악장 해왕성에 신비로운 자라는 부제를 두어 바다의 신을 표현했는데, 무대 바깥에 가사 없이 선율만을 연주하는 6성부의 여성합창을 배치하였다. 여성합창의 느낌은 기악의 색채와는 또 다른 아주 몽환적이고 아득한 느낌을 준다. 전곡을 다 감상하기 위해서는 50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밤하늘에 별이 가득한 어느 날 이어폰을 꽂고 별들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들어 봄 직한 음악. 너무 길다 생각되면 7개의 악장 중 한 개만 골라 들어도 되는 모음곡이다. 모음곡은 독립적인 한 개씩의 음악을 모아 둔 형식이니 좋아하는 악장만 선택하여 들어도 된다. 나는 7악장을 선택하기로 했다. 스타워즈가 상상되는 스펙타클한 리듬과 관현악의 색채가 아주 화려하고, 심장을 두근 뛰게 해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부제가 기쁨을 가져다주는 사람이지 않은가. 현악기와 금관악기와 타악기의 그 현란한 색채로 그려낸 별.

올 여름에는 강릉 안반데기 어디메쯤 혹시 반딧불이 홀 홀 날아다님 직한 깜깜한 곳에 자리를 펴고 누워 이제는 휘황한 불빛에 그 빛을 잃어버린 저 아름답고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시간을 내게 선물로 주어볼까.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