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

‘분열을 조장했다’는 말이 되지만 ‘분열을 북돋웠다’는 이상하다. ‘꿈을 조장했다’는 어색하지만 ‘꿈을 북돋웠다’는 자연스럽다. 우리말에는 부정적 문맥과 긍정적 문맥에서 같이 쓸 수 없는 어휘들이 있다. 그런데 조장도 북도 농사에서 유래되었다. 

‘북주다’는 작물의 뿌리를 흙으로 덮어주는 일이다. 뿌리는 영양분을 흡수하는 기능을 하니 흙속으로 파고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토양이 침식되거나 이랑에 심은 경우는 뿌리가 겉으로 드러날 수 있다. 당연히 두툼하고 부드럽게 흙으로 덮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북주는’ 농민의 손길에 담긴 뜻이, 기운이나 정신을 살린다는 ‘북돋우다’의 의미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조장하다’는 경우가 다르다. 맹자가 만들어내고 유행시켰으니 2천3백년쯤 된 어휘다. 맹자가 구라가 센 인물로 유명한 까닭은,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비유나 사례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장’이나 ‘오십보백보’같은 것들이다. 맹자는 매우 재미있고 명쾌하고 훌륭한 선생님이다. 그러나 ‘조장’에 대해서는 좀 유감스럽다. 잠시 알아보자.

맹자의 제자들이 “선생님은 무엇에 뛰어나십니까?”라고 물었다. 맹자 가라사대, “나? 남의 말에 담긴 뜻을 잘 간파(知言)하고 호연지기(浩然之氣)도 잘 기르지.” 호연지기? 저수지의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충만한 기운이 연상되기는 하는데, 대체 무슨 소리지? 제자들이 뜻을 물었더니 맹자가 한다는 소리 “음, 설명하기가 어렵구만.” 

이어지는 설명을 들어도 아리송하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꾸준히 의로운 일을 행하되, 결과를 바라면서 서두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진중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우화를 하나 꺼냈다. “벼 싹이 자라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자가 있었지. 어느 날 집안사람들에게 ‘오늘 벼 싹이 자라도록 돕느라 애썼더니 아주 피곤해’라고 하지 않겠나? 아들이 놀라서 달려가 보았더니, 위로 뽑아 올린 벼 싹이 말라 죽어 있었네.” 한문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나시는지? 조장(助長)이 처음 등장해 유래된 이야기다. 

우화란 것이 대체로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하면서도 교훈적이기는 하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우둔한 농민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생각해 보자. 세상 어떤 농민이 빨리 키우겠다고 싹을 뽑아 올려 키운다 말인가? 아무리 우화라고 해도 이건 심하다. 농민은 애지중지 볍씨를 뿌렸을 것이고, 싹이 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싹이 나면 주변의 잡풀을 뽑는 사람이 농민이다. 빨리 자라라고 싹을 뽑아 올린다? 그런 농민은 만고에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한 가지 합리적인 추론을 해 본다면 치매에 걸린 늙은 농민일 경우에는 가능하다. 이야기 속에서 아들이 허겁지겁 밭으로 달려간 걸 보면, 아마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렇다면 맹자는 매우 안타까운 스토리를 어디서 듣고서는, 조급하고 어리석은 농민이라고 비틀었으니 고약하다. 그러나 핵심은 다른 데 있는 우화일 뿐이니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우리는 조장하는 일 말고 북돋우는 일을 더 많이 하면 좋다. 춘천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조장하지 말고 무엇을 북돋우는 춘천이라면 행복한 춘천이다. 비판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북을 줘야 한다. 춘천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춘천의 먹거리 시스템이 더 건강하고 더 개혁적이고 더 미래지향적이 되도록 북돋웠으면 한다. 이제 막 시작하려는 마을자치지원센터를 북돋워 춘천시민들의 자치와 민주주의가 열매 맺도록 함께 북을 주기 바란다. 춘천협동조합지원센터도 청년청도 농업회의소도 청년농업인센터도 북을 주자. 

반면에 조장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할 텐데 쉽지가 않다. 수년째 춘천시민을 괴롭히는 레고랜드는 대표적인 조장이다. 보랏빛 전망을 앞세우며 섣불리 결과를 홍보하는 레고랜드는 얼마나 지긋지긋한가? 소양댐 아래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는 또 어찌 될 것인가? 서두르다 망치지는 않을는지 심히 염려스럽다.

춘천시 정책뿐이겠는가? 아이 키우는 평범한 일도 조장과 북돋움 사이에서 지혜로워야 하겠고, 우리가 어울려 살며 도모하는 일이 다 그렇다. 맹자의 끝맺음을 새겨 들어보도록 하자. “이처럼 조장하면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해치게 되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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