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초등학교 입학하면 돌봄절벽입니다. 어린이집 졸업하는 게 두려워요. 학교 마치고 저녁때까지 학원으로 돌리는 거 공부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도 안하고 싶어요. 안전한 곳에서 편안하게 놀고 쉴 수 있으면 정말 좋겠어요.”

가족단위로 분절된 사회에서 아이를 기르는 일은 유아기도, 학령기도 참 쉽지 않다. 부모가 모두 직장에 다니는 경우는 물론이고, 부모 중 한사람이 아이들을 위해 전업주부를 하고 있더라도 가정에서 오롯이 아이들과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등교를 하게 되면서, 하루 종일 아이들끼리 지내야하는 가정들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초등학교시절엔 수업을 마치고도 학교 마당에서 친구들과 한참을 놀다가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는 길 중간 중간 친구 집에 들렀다. 친구 집에서 미숫가루, 찐 감자 등을 얻어먹고 더 놀다가 어느새 해가 꼴깍 넘어서야 들어간 날도 있었다. 일하시는 엄마, 아빠는 으레 친구 집에 들러 놀다오겠거니 하며 큰 걱정을 하지 않으셨다. 

스무 살이 넘은 큰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근처에 살지 못하는 걸 큰 아쉬움으로 여겼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아이들의 초등학교는 시 외곽에 있어, 날 때부터 가족끼리 알고 지내 서로의 집을 몰려다니며 놀고, 먹고, 함께 자기도 했던 아이들과 떨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춘천에 대단위 아파트가 경쟁하듯 들어섰다. 후평동, 온의동, 퇴계동, 석사동 등 지역이 새로 개발되고 조성될 때마다 그 주변을 중심으로 새 아파트들이 들어섰고, 이사가 잦아지며 동네에서 함께 나고 자란 친구를 갖기가 어려워졌다. 아이들이 마음 편히 갈 곳은 “우리 집”뿐이다.

하교한 후 긴긴 시간을 함께 놀며 보낼 친구를 찾기도, 친구와 함께 안전하게 시간을 보낼 곳도 없다. 더구나 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갈 수 없으니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바쁘게 살던 일상에서 벗어나 가족들이 오롯이 함께 지낼 수 있는 것 또한 귀한 시간이지만 누군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어른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즈음에 춘천에서 공동돌봄에 대한 고민이 공론화 되고 있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지역아동센터나, 학교방과 후 프로그램 같은 공적돌봄에 참여할 수 있는 아이들은 소수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돌봄(어른, 공간, 친구, 시간)을 필요로 하고 있다. 

공적돌봄에 참여할 수 없는 이들이 공동돌봄의 대안을 시도하고 있다. 학교, 온라인모임, 지역을 중심으로 서너가정이 모여 공간을 임대하기도 하고, 돌봄지기를 돌아가며 맡고, 어렵지만 집을 개방하기도 한다. 맞벌이가정과 외벌이 가정이 모여 적절한 역할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들었다. 아이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아이들의 싸움이 어른들 간의 서운함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지만 공동체 안에서 다시 만나 먹고 마시며 속내를 털어놓고 화해하며 더욱 친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현관문을 닫은 아파트문화에서 자라온 세대들이 모르는 이웃과 손을 잡고 현관문을 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평생 할 수 없었던 일도 시도하게 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놀이가 밥이고, 놀면서 배우는 아이들에게 같이 놀 친구와 시간, 안전한 공간, 그들을 지키고 바라봐줄 어른이 필요하다. 혼자는 어려운 이 일이 우리와 같은 고민을 가진 양육자들을 만나 고민하고 손잡을 때 비로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7월부터 춘천사회혁신센터에서는 대안돌봄을 고민하며 실천하고자 하는 양육자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단순히 공동돌봄의 대안을 넘어서 구성원들의 특성과, 요구, 철학을 반영한 다양한 형태의 공동돌봄이 시도되리라 기대한다. 작은 도서관, 마을회관, 단지 내 유휴시설 등 잊힌 공간을 찾아내는 작업이 시도되고, 마을탐방, 산책 등 적절한 어른의 관심과 시선이 있으면 안전하게 진행될 활동도 시도될 수 있겠다. 눈에 보이는 공동체로서의 마을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게는 내밀 수 있는 손과, 다양한 온라인네트워크,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형태의 마을이 살아나고, 그 속에서 과거의 아이들처럼 오늘의 아이들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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