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환희와 기대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더 힘들고 고단할 거라는 전망이 어둡게 내려앉은 세밑. 그럼에도 이보다 더 어둡고 힘겨운 시간을 살아낸 누군가가 한번쯤, 우리의 어깨를 따스하게 안아주며 ‘괜찮다, 다 괜찮다, 그래도 우리 가보자’ 하며 무거운 2016년의 문을 함께 열어볼 수 있게 힘을 주실 이가 있으면 싶었다. 꼰대 말고, 잔소리 말고, 모진 세월의 고통마저 묵직한 삶의 무늬로 새겨 넣으셨을 어른. 춘천에 그런 분이 계실까. 편집회의장은 무거운 침묵 끝에 이 한 분의 이름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제강점기에 청년기를 보내고 전쟁과 분단, 군부독재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근대사를 온몸으로 겪었으되 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춘천의 농촌운동과 시민운동의 시작을 함께 해 오신 박승한 선생. 이제 곧 90을 앞둔 선생의 삶과 선택을 통해 새해 우리의 마음가짐을 정갈히 다듬어 본다.

박승한 씨
박승한 씨

아나키스트, 농촌농민운동가, 교사,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삶의 궤적을 살아오셨습니다. 그런 삶의 뿌리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내게는 두 분의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그 중 생(친)할아버지는 당시 반일정신이 대단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홀로 북간도로 가셔서 항일운동도 하시고, 우리나라로 돌아 와서는 동네 청년들을 모아놓고 우리 역사교육을 시켰어요. 그 분의 나이가 겨우 18세~19세 때의 일입니다. 국가보훈처에서 조부장의 활동 기록을 정리해서 유공자로서 보상을 받으라 했지만 하지 않았어요. 보상을 바라고 하신 일도 아니고, 조부가 하신 일이므로 내가 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친조부의 의기와 양조부의 자산을 세상과 나누다

불의에 저항하고, 도전하는 힘은 친할아버지로부터 받으신 것인가 봅니다. 양조부로부터 받은 상당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이야기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53년 봄, 양조부께서 상당한 재산을 넘겨주셨어요. 이미 소작제도를 반대해오고 있었고, 상속제도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우리 집 소작을 하시던 세 분들께 나눠드리고, 나머지도 전쟁 때 소실된 가옥을 신축하거나 자유사회운동, 전국농촌운동자협의회, 춘천경실련 등 경상비로 쓰기도 했지요. 할아버지는 애써 장만한 토지를 자손이 갖지 않고 배분한다는 것에 서운해 하시면서도 내 선택을 따라주셨습니다.

친일세력에 기반하여 탄생한 정부 지지 못해

원칙대로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라, 선생님의 삶이 간단치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는 대단한 카리스마도 없고, 그저 한 가지 내가 한 것은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해방 후에는 친일계열의 여당이 잡은 정권에 대해 반대하며 살아온 거예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이 정부를 지지할 수 없었던 것은 그 출발이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나는 1세대 자유사회(아나키스트)연구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무상으로 소작인들에게 땅을 배분했다는 이유로 정보부로부터 취조를 받았고, 일본에서 아나키즘 책을 수입해서 볼 때에도 사상이 불순하다며 책을 압수당하고 협박을 받기도 했어요.

아나키즘은 요즘 말하는 종북과는 무관하고, 공산주의와도 아주 다른 자유주의사상에 기반한 건데도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것에 이름표를 붙임으로써 반공이데올로기를 강화해왔습니다. 내가 교편을 잡다가 해고돼 소를 키웠는데, 대책 없이 소를 수입하여 국내산 소값이 폭락을 했습니다. 그때 자국민의 삶을 좀처럼 고려하지 않는 정부와 국가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이민준비를 했는데, 심지어 정보부에서 이민절차를 도와주려고까지 했어요.

마을 공동체 운동, 의료보험조합, 종자수입 등 시대를 앞선 생각

선생님의 문집 <북한강>을 보니 1970년대 글들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마을주의, 의료보험조합운동, 종자수입 등에 대한 내용을 보면 지금도 놀랄 정도의 통찰과 문제의식이 보입니다.

어찌 보면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 당시의 주장이 이제야 인정되는 것도 있고, 아직도 시대가 그 과제를 요청하고 있는 것도 있고.

내년 4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 해야

새해에도 녹록치 않을 듯합니다. 춘천 사람들에게 이 고단한 시기를 잘 건너갈 수 있도록 한 말씀 해주시죠.
춘천이 자연 환경은 참 아름답고 좋지만, 사람이 그 자연만 못한 거 같아요.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 번도 다른 선택을 해본 적이 없어요. 매번 동일한 경향을 뽑았지. 강원도의 정서를 바꿔야 해요. 이 신문(<춘천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어요. 춘천처럼 대학이나 지식인이 많은 곳이 왜 그토록 보수적일까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지식인들이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기득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남보다 더 배운 사람들이 탐해야할 것은 남을 지배하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옳은 일’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그런 일을 해줄 사람과 당을 잘 살펴서 꼭 ‘다른 선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는 홍안의 청년. 그의 가슴은 여전히 뜨겁게 뛰며, 그의 문제의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불의에 분노하고,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는 저런 어른을 우리 시대에 또 만날 수 있을까. 그가,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춘천의 마지막 아나키스트 박승한 선생이 마지막에 힘주어 말씀하셨던 “다른 선택”을 해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의 당부가 이번만 큼은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허소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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