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대(‘교육과 나눔’ 이사장)

‘사회적 경제’ 관련 강의를 할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제일 먼저 던지는 질문이 단어조합이다. 다양한 글자를 무작위로 써놓고 사회적경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을 조합해서 말해보도록 유도한다. 이미 사회적경제를 접해 본 경험이 있거나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5개 이상 맞히기도 하고, 사회적경제가 생소한 사람들은 겨우 1~2개를 맞히며, 수강생으로 왔으나 수업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한 개도 맞히지 못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맞히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협동’이다.

맞다. 사회적경제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협동이다.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인건 약 2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혼자서 살기 어렵다는 의미가 분업화된 사회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살기 어렵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돈이 돈을 버는 사회구조로 인해 빈자들 각자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협동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다만 로빈슨 크루소처럼 고립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나 지금이나 돈이 돈을 버는 사회에서 빈자들 간의 협동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앞에서 ‘2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라고 얘기한 이유는 근대적 협동조합의 효시라고 불리는 ‘로치데일 공정 선구자 조합’이 창립한 해가 1844년이기 때문이다. 200년이 되려면 24년이 남긴 했지만 얼추 2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로치데일은 축구팀으로 유명한 영국 맨체스터 인근에 있는 도시의 이름이다. 이 로치데일에서 28명이 노동자가 자신들을 포함한 노동자계급의 비참한 삶의 현실을 개선하고자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이 조합이 로치데일공정선구자조합이다. 

1844년 당시 노동자들의 삶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일자리는 부족했고, 먹을거리에 대한 상점 주인들의 횡포는 끝이 없었다.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소득이 낮은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10세 미만의 아동들도 공장으로 내몰렸다. 아이들도 일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살아남기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1830년에 발간된 ‘미성년 아동 노동에 관한 영국 의회 조사 보고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공장이 바쁠 때 소녀들은 새벽 3시에 나가 밤 10시에 돌아오는데, 19시간의 노동 중 휴식시간은 1시간이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노동 강도였다. 더 황당한 건 같은 보고서에 이런 구절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큰 딸이 손가락을 다쳐 5주간 치료했는데, 사고가 나자마자 임금은 전액 지불이 정지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넓고 나쁜 놈은 많다.

부족한 일자리에 낮은 임금, 극심한 영양부족, 상점 주인들의 횡포로 인해 질 낮은 생필품을 높은 가격에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여러분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물론 동 시대를 살아가는 자본가라면 이런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다만 당신이 궁핍한 노동자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들의 횡포와 빈부격차에 대해 ‘가난한 건 다 내가 무능한 탓’이라며 신세한탄만 할 것인가? 아니면 이 빌어먹을 사회를 조금이나마 고쳐보기 위해 ‘나로부터 결의결사’의 자세로 투쟁할 것인가? 

28명의 로치데일 선구자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그들이 설립한 협동조합이 정치체제나 경제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지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이들은 로버트 오웬이라는 사람이 꿈꿨던 이상향에 조금 더 다가서고자 스스로 28파운드를 모으고(당시 28파운드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각 조합원이 1파운드씩 출자를 했는데, 한 번에 내지 못하고 매주 2펜스씩 1년에 걸쳐 1파운드를 출자할 수 있었다), 수레로 물건을 실어날랐다. 그리고 그 협동조합은 이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Co-operative Group’이 되었다. 

현대사회의 인간은 누구나 협동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정된다는 신화를 믿지 않은 지 오래다. 다시 감옥에 갈지도 모를 대한민국의 대표적 부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나 같은 반백수와 보이지 않는 협동관계에 있다. 아, 이제는 프린터 하나를 제외하고 삼성제품을 쓰지 않으니 나와의 협동관계는 매우 옅어졌겠지만. 

근본적인 혁명은 포기한 지 오래다. 로치데일의 개척자들만큼이라도 춘천에서 성공하는 협동조합 하나 만들어 보는 게 일생의 목표다. 우리도 춘천에서 협동조합 더 나아가 사회적경제라는 아름다운 꽃 한 송이는 피워봐야 저승 가는 길이 덜 외로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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