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포커스] ‘철을 녹이고 이어 붙여 나를 드러낸다’
[문화포커스] ‘철을 녹이고 이어 붙여 나를 드러낸다’
  • 박종일 기자
  • 승인 2020.08.2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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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박예지 개인전 30.까지… 갤러리 카페 ‘느린시간’(서부대성로 446-2)

‘느린시간’에 들어서면 벽면 곳곳에 식물의 마른 넝쿨과 나뭇가지가 걸려 있다. 갸우뚱거리다 한 걸음 다가서면 그것은 철을 이용해서 말(馬)의 두상을 단순한 이미지로 표현한 조형물임을 알게 된다. 박예지 작가의 말 연작들이다.

대상을 단순하게 표현한 예술작품이 오히려 대상 본래의 의미를 더 풍성히 상상하게 만들 듯이 그의 작품에서 선으로 남은 말들은 말의 존재적 근원과 이야기를 더욱 또렷하게 부각시킨다. 또한 말은 인류와 함께 오랜 역사를 함께 일궈 온 동물이기에 그의 작품들에서 인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겹쳐진다. 

박예지 조각가와 그의 말(馬) 연작.

기계에 자리를 내 줘 노동력을 상실한 존재, 도시의 일상적 존재가 아니기에 이상과 동경을 상징해 온 존재, 대자연을 자유롭게 질주하고픈 끓는 에너지를 상징하는 존재. 

수많은 시인들이 말을 통해서 신화와 인간의 삶을 노래했듯이 작가는 말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이야기한다. 

왜 하필 말 일까? “뚜렷한 이유는 없어요. 아주 어려서부터 말이 무작정 좋았어요. 그림·사진·인형 등 말이라면 뭐든지. 말은 내 존재의 일부분과 같아요. 그러니 자연스레 작품의 테마가 된 거죠. 나를 채우는 또 다른 하나는 용접이에요. 어릴 적 우연히 용접하는 걸 보고는 불꽃이 튀고 금속이 물처럼 녹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그는 12살 어린나이에 예술과 자유로움에 이끌려 과감히 파리로 유학 떠나 ‘에꼴불’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2010년 귀국했다. 잠시 디자인회사에 다녔지만 원하는 삶, 예술적 영감이 이끄는 삶으로 뛰어들었다. 철을 녹이고 이어 붙여서 펼쳐가는 조형작업의 길 말이다.

작가는 말(馬)을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말 조련 견습생과 용접을 배우는 등 철저히 준비를 한 후 지난 2017년 40여 점의 말 조형물을 선보이는 첫 전시회를 열고 디자이너에서 조각가로 변신했다. 

자신을 사로잡은 일과 대상에 과감히 몰두하고 오래도록 탐구하는 성향의 소유자답게, ‘말(馬)’과 용접에 대한 오랜 사랑은 작가의 예술적 뼈대가 됐다.

박예지 〈mydreamyours〉

그가 만든 입체 조형물들은 티그용접으로 용접봉을 녹이며 차곡차곡 쌓아 올려서 제작된다. 3D펜으로 조형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게 탄생한 입체 작품들은 소장욕심을 유발시킬 만큼 세련되고 멋스럽다. 그 덕에 방송사의 요청을 받아 인기드라마 속 주요공간을 장식하기도 했다.

평면 조형물들은 철판위에 스케치를 하고 용접봉을 녹여가며 드로잉 하듯이 제작하거나, 아크용접을 통해 용접봉을 촛농처럼 떨궈서 이미지를 형상화 시킨다. 

그렇게 해서 탄생하고 현재 전시중인 평면 7점, 입체조형 4점의 말들은 단순 조형미의 진수를 보여준다.

작가는 “거창하게 미학적·철학적 의미부여를 하며 작업을 하지는 않아요. 그저 좋아하는 대상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 금속을 녹이고 쌓아올리고 이어 붙여서 작업합니다. 보시고 마음껏 해석하고 상상하세요. 굳이 말하자면 금속이 이어 붙는 과정에서 나와 사람들, 세상의 관계를 고민하기도 하고, 질주하는 말을 떠올리며 일상을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작가는 용접을 통해 말 연작을 계속 만들어 가면서 누드 드로잉과 회화작업으로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하지만 대상을 단순화해서 그 원형이 갖고 있는 존재의 근원과 에너지, 이야기를 또렷하게 부각시키는 지향은 유지할 계획이다. 하지만 또 모를 일이다. 자유롭고 열린 마음을 지닌 작가에게 계획은 언제든 수정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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