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어정 7월 건들 8월”이란 말이 있다. ‘어정’은 일에 정성을 들이지 아니하고 대강한다는 뜻이고 ‘건들’은 일이 없거나 착실하지 않아 빈둥빈둥하는 모양을 말한다. 둘 다 농사와 관련된 말인데 열심히 일하는 모양새는 아니다. 7월과 8월이 그렇다는 것인데, 더운 한여름에 들어서면서 농사일이 일시적으로 한가해지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농사짓는 시기를 크게 농번기와 농한기로 나눈다면 7, 8월은 준 농한기에 해당한다. 농한기인 겨울철처럼 아주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을거두기를 앞두고 잠시 쉬어가는 시기이다. 특히 농사일 중 가장 힘든 논매는 일이 막 끝난 시점이라 많이 지쳐있는 때이기도 하다.

음력 7월 15일 백중(백종, 百種) 즈음에 벌이는  호미씻이 행사는 고되고 힘들었던 한 여름의 논매는 일을 마치고 호미를 씻어서 넣어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사진 제공=춘천문화원

음력 7월 15일을 백중(백종, 百種)이라고 하는데, 이날은 불가에서 의례를 치르기도 한다. 농가에서는 이즈음에 흔히 호미씻이라고 하는 행사를 마을 단위로 행한다. 이 호미씻이는 말 그대로 호미를 물로 씻는다는 뜻인데, 앞서 말했듯이 논매는 일이 끝났음을 알리는 행위이다. 고되고 힘들었던 논매는 일을 마치고 호미를 씻어서 넣어둔다는 의미이다. 호미씻이는 전국적으로 행해졌는데, 대개 백중 즈음에 하루 날을 잡아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온 마을 사람들이 근처 야외로 나가 마시고 즐기며 놀았다.

농사일, 특히 논농사는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을 전체가 나서서 함께 모를 심고 논을 매고 벼를 베어야 가능했다. 자연스레 마을공동체가 강조되고 그에 따른 공동체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동면 상걸리에서는 “이까짓 호미 이제 안 써!” 이렇게 말하면서 호미를 씻었다고 한다. 또한 노는 장소도 마을의 개울가보다 이장 집에서 모여서 먹고 놀았다고 한다. 호미씻이도 이처럼 마을공동체를 굳건히 하는 하나의 행사로 볼 수 있다. 서로 논매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위로하면서 또 내일부터 새롭게 할 일들을 함께 되새기는 자리가 되었다. 

사람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 일을 하면 쉬어야 하고 쉬어야 또 새로운 일에 전념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았기에 힘든 일을 마무리하면서 하루 푹 쉬어갔던 것이다. 다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안타까운 시기를 맞이했다. 모일 수 없으니 아름다운 전통유산인 마을공동체 문화가 무색해진다. 다함께 모여서 개울에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 어렵고 힘든 일들을 돌아보는 시기가 어서 돌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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