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음(音)’은 ‘악(樂)’이다.
[人터view] ‘음(音)’은 ‘악(樂)’이다.
  • 이경애 시민기자
  • 승인 2020.08.31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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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플루트를 부는 남자, ‘콘서트 가이드’ 최성순 씨

코로나19 상황은 여전히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연일 홍수 피해 뉴스가 귓전을 아프게 때리던 중, 모처럼 햇빛이 잠깐 얼굴을 내민 날, 춘천의 음악 전도사 ‘최성순 콘서트 가이드’를 만났다. 골목 안 능소화의 붉은 빛조차 우울해 보이는 요즘, 음악이 무슨 대순가? 하는 생각들도 하겠지만, 그래도 음악은 우리의 곁에서 항상 치유의 일선을 지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아프고 우울한 요즘, 그가 말하는 음악은 우리들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까….

“음악은 내 인생 그 자체이고 행복이고 나의 전부죠.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음악과 함께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행복하니까요. 나의 꿈은 처음부터 음악 선생님이었어요. 한 번도 다른 꿈은 가져본 적이 없어요. 콘서트 가이드로, 연주회 사회자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강사로 사는 지금 그 자체가 ‘나’인 거예요.”

이영춘 시인 시집출판회 기념 팬 플루트 축하연주(2020년 5월)

1954년생,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너나없이 가난했었다. 음악 선생님을 꿈꾸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쩔 수 없이 잠시 음악에 대한 외사랑을 접고 춘천의 조그만 카센터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그 일을 계속할 수는 없었다. 결국, 가출을 결심하고 집을 떠난 그는 서울 명동의(그 유명한) ‘은하수 다방’에서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하면서 아주 느리게 꿈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밴드 활동을 했어요. 음악에 미쳐 있는데 카센터 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무작정 서울로 갔죠. 거기서 선배 디제이가 잠깐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디제이 일을 했어요. 힘겹고 고생스러웠지만 행복했어요.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강원대학교 사범대학에 음악교육학과가 개설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국립대에다 사범대학이라 등록금이 싸잖아요. 그래서 춘천으로 다시 내려와서 지원을 했지요. 합격을 하고 나니까 아버님이 고맙다 그러시더라고요. 학비가 얼마 안 드니까. 그렇게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1회 졸업생이 되었어요.” 졸업 후, 음악 선생님의 꿈을 실현한 그는 첫 부임지부터 퇴직을 하는 순간까지 오직 제자들과 함께 음악만으로도 넘치게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했다. “교감으로 퇴직을 했지만, 나는 그냥 ‘음악 선생님’으로 불러주었으면 좋겠어요. 교감 노릇은 재미없었어요! 난 그냥 음악 선생이 좋아요.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연주하고, 또 공연을 준비하는 그런 날들이 나에게는 축복과도 같았으니까요. 훌륭하게 자란 제자들을 보는 일은 세상에 다시없는 기쁨이지요. 그런 제자들을 보면서 내가 한 번 더 행복해지니까.”

‘맛있는 클래식이야기’ 강좌 (2020년 4월 클잎정 카페)

그는 퇴직 후에도 음악의 세계를 벗어나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중 속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클래식 강좌를 비롯해 2년 전부터는 팬 플루트 연주를 시작했고 콘서트 가이드로서 바쁘게 움직이면서 춘천 시민과 함께하는 음악을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팬 플루트 연주곡을 들었는데 기가 막힌 거라! 뭐랄까, 근원적인 슬픔? 자연의 숨소리? 그런 게 막 느껴졌어요. 내 전공이 플루트이니까, 해보면 되겠다 싶더라구. 그래서 혼자 열심히 연습했어요. 입술이 찢어져서 피가 몇 번이나 났는지 몰라요. 시내 연습실 한 곳을 빌려서 지금도 하루 두 시간씩은 무슨 일이 있어도 팬 플루트 연습을 해요.” 사실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된 계기도 팬 플루트 때문이었다. 동부 노인 복지관에서 개최한 온라인 공연행사에서 우연히 그의 팬 플루트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는 아련한 추억 속의 음률에 젖어 들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만나고 싶었다.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어서 모든 공연이랑 강연이며 행사가 다 취소됐어요. 아쉽고 안타깝고 맘이 안 좋지요. 가끔 소규모 모임은 있긴 한데…, 그래도 많이 아쉬워요.” 인생 제일의 행복은 음악이라는 그에게 즉석 연주를 부탁했다. 아주 흔쾌히 받아주는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기다렸다는 듯, 후다닥 뛰어나가 팬 플루트를 들고 들어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 같았다. “혹시 듣고 싶은 곡 있어요?” 하는 말에 내 신청곡은 - 구식냄새 폴폴 나는- 제임스 라스트의 ‘외로운 양치기’. 게오르그 잠피르의 연주곡으로 여고 시절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무한 반복해가며 들었던 추억의 그 곡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다른 손님들의 앙코르가 계속되었다. 작은 카페는 순식간에 팬 플루트 공연장이 되었고, 사람들의 표정은 더없이 행복하고 그윽해 보였다. 음악은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고, 추억을 소환하며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래서 아름답고, 그래서 불멸인 것이다. 

강원대학교 인문예술강좌 ‘맛있는 클래식 이야기’ 강좌(2020년 1월 클잎정 카페)

그가 이렇게 오롯이 삶의 모든 순간을 오직 음악만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는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당연히 아내죠. 8년 연애하다 결혼했는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뭐든 다 알아서 하는 사람이야. 집안에 뭐가 망가지는지 뭐가 필요한지 나는 몰라요. 자기가 알아서 다 고치고 정리하고…, 심지어 나한테 쓰레기봉투 한 번도 들라고 한 적이 없어요. 어쩌다 ‘이리 줘’하고 내가 들면 다시 뺏어가.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내가 나쁜X 같을 거야. 내가 시원찮아 그런지, 믿지 못해 그런 건지. 그 사람은 완벽주의자예요. 뭐든 자기가 해야 하는 사람이라…,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만든 건지도 모르죠. 말로 다 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에요. 불면증이 심해서 많이 힘들어하면서도 어쩌다 손주 녀석들이라도 오면 손수 이것저것 해 먹이느라 몸살이 날 정도야. 그런 사람이 세상에 또 있겠어요? 그래서 걱정이에요. 나는 은행 일도 못 보는 사람이거든. 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사람 떠나면 살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에 그는 잠시 침묵했다.

춘천 ‘늘 푸른 시니어 합창단’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모습

사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어디에서든 위안을 받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를 살게 하고 다시 행복을 꿈꾸게 하고 남은 시간을 충만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음악, 그리고 아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음악 이야기를 듣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카페 안에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는, 아름다운 팬 플루트 연주를 더 듣고 싶은 욕심을 접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일어섰다. 

언제고 꼭 한 번은 그의 음악 이야기를 정식으로 듣고 싶다고 생각하는 그 찰나, “다음 달, 9월 2일에 상상마당에서 ’빅밴드‘ 창단 연주회가 있구요. 9월 5일에는 시립박물관에서 ’나도 성악가다’ 강좌가 있어요. 꼭 오세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의 음악 이야기가 부드러운 휘파람 소리처럼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우울한 얼굴빛으로 배웅하던 능소화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골목길을 접어들면서 나는 어느샌가 ‘외로운 양치기‘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전이어서 잊고 있었던 그 선율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날 밤 내 휴대폰 뮤직앱에는 게오르그 잠피르의 음악 7곡이 저장되었다.

이경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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