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음악을 흔히 국악(國樂)이라 부른다. 국악은 우리 민족의 정서에 뿌리를 내리고 삶의 곳곳에서 살아 꿈틀대는 아름다운 생명체다. 우리나라 안에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해서 모두 국악은 아니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요즘 노래들은 대부분 국악과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지나간 음악이 모두 국악은 아니다. 국악의 판단여부는 음악이 만들어진 공간이나 시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이 뿌리내린 문화적 토양분에 달려있다.

일본제국주의는 우리 민족정서에 엄청난 패악(悖惡)을 저질렀다. 사진과 영화를 조선에 이식시키면서 일본의 정신을 심으려 했다. 일본의 연극과 음악을 이식시키려 부단히 애를 썼다. 일제는 자기들의 문화를 이식시키기 위한 첫 단계로 마을의 풍물굿을 금지시켰다. 전통음악이나 공연을 고사시키겠다는 속셈이었다. 전통공연장은 물론 현대식으로 꾸민 극장들도 강제로 폐장시켰다.

1902년 일제는 현대 문명의 에너지원인 전기를 독점한다. 전기를 독점했다는 것은 곧바로 전차라는 새로운 교통수단과 영화라는 신문화를 독점했다는 걸 의미한다. 일제는 독점한 전기를 전국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우선 마을의 물레방아를 모조리 없앤다. 동네마다 설비된 주된 에너지원인 물레방아를 없애야 사람들이 새로운 에너지원인 전기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제는 물레방아를 이용하는 방앗간을 대신해 전기를 사용하는 정미소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다. 후에 정미소는 조선의 곡물을 수탈하는 거점이 됐다.

영화《천국에 간 비올레타, Violeta se Fue a Los Cielos》(2011)는 칠레의 민속가수 ‘비올레타 파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에는 그녀가 칠레의 전통음악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유럽에서 공연을 펼치다가 모국으로 돌아와 민속음악 공연장을 만들어 민속음악의 확장을 꾀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는 민속음악을 수집하기 위해 칠레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는 그녀의 열정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힘겹게 민속음악을 지키려던 그녀의 노력은 다음 세대인 자녀들에 의해 지속된다. 오랜 동안의 스페인 제국문화에 의해, 그리고 새롭게 침투하는 타 국가의 문화에 의해 차츰 모습을 잃어가는 칠레의 혼을 민속가요를 통해 존속시키겠다는 그녀의 열정이 영화 내내 묻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부른다는 면에서 민속음악이야말로 대중음악이다. 대중성을 띠고 생존해온 음악이 민속음악이다. 그런데 일제는 조선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돼 온 대중적 민속음악을 구시대의 유물로 폄하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강요했다. 조선에 일본 민속음악을 강제로 이식하면서 대중음악이란 이름으로 자리를 확보해 나갔다. 졸지에 일본의 민속음악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으로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면서 대중음악의 핵심이 됐다.

누군가가 민속음악을 발굴해 내고 보존하기 위해 수집하고, 현대화하기 위해 몸소 연주하고, 공연을 통해 전파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민속음악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 안타가워 일생을 내던진 ‘비올레타 파라’와 같은 이가 없다면 우리 민속음악의 미래도 암울할 수밖에 없다.

 

이정배(문화비평가)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