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문화유산 얼마나 알까?] 춘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 곰실공소
[춘천 문화유산 얼마나 알까?] 춘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 곰실공소
  • 춘천학연구소
  • 승인 2020.09.1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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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시 동내면 고은리는 대룡산 자락을 따라 넓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지금은 외곽도로 개통으로 도로여건이 좋아져 많은 전원주택이 들어섰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시내버스가 하루에 두 번 정도 오가는 춘천시내의 오지였다. 외곽도로에서 고은리 마을길로 접어들어 조금 들어가면 우측에 아담한 성당이 있다. 춘천 최초의 천주교 성당인 곰실공소다. 곰실공소란 말 그대로 곰실에 있는 공소라는 말이다. 곰실은 고은리의 옛 지명이다. 정겨운 어감을 지닌 곰실에 대해 곰이 나오는 마을이라는 설명은 일단 수긍하기 어렵다. ‘곰’이란 말은 ‘뒤[後]’라는 의미와 ‘크다, 위대하다, 신성하다’는 두 가지 의미로 풀 수 있는 고유어다. 따라서 곰실은 ‘뒤쪽에 있는 마을’ 또는 ‘큰 산, 신성한 산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되는데, 고은리는 두 가지 설명이 모두 가능하다. 후상리, 후중리, 후하리라는 행정지명이 일제강점기에 실제로 쓰였고, 마을을 감싸고 있는 대룡산은 기우제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었기 때문이다. 공소라는 말은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규모의 천주교회(성당)를 말한다. 주임신부가 상주하는 성당은 본당이라고 한다.

곰실공소.     출처=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천주교 춘천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곰실공소는 엄주언(세례명 마르티노, 한국식 표기는 말딩)이란 인물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1872년 춘천 동면에서 출생한 엄주언은 한학을 공부하다가 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읽고 천주교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한국천주교의 본거지이자 성지로 알려진 경기도 광주 천진암으로 가서 3년 동안 공부하고 세례를 받은 후 전도의 사명을 띠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온다. 고향에서 환대받지 못하여 외딴 산골인 고은리 대룡산 산밑 윗너브래(廣坪)에 폐가를 구해 이주한다. 그의 검소한 삶과 이웃에 대한 헌신에 감명받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신자가 늘어나자 조금 더 큰 아랫너브래로 거처를 옮겼고, 1920년 지금 위치에 공식적으로 성당을 세웠다. 신도가 늘어나면서 상주할 신부의 필요성을 느낀 그는, 당시 강원도 유일의 본당인 횡성 풍수원성당과 서울 명동성당을 거듭 찾아가 사제 파견을 간청하였고 마침내 1920년 9월 김유룡 신부를 모시게 된다. 곰실공소가 춘천 최초의 천주교 본당이 된 것이다. 이후 더 많은 신도가 찾을 수 있도록 시내로의 진출을 모색하여 신도들 전원이 가마니를 짜고 새끼를 꼬아 몇 해에 걸쳐 모은 돈으로 약사리 고개 부근의 땅을 매입하고 1928년 5월 춘천 본당을 설립한다. 춘천주교좌성당인 죽림동성당의 전신이다. 

엄주언     출처=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천주교 춘천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1955년 83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엄주언은, 사제가 아닌 일반 신자로서 춘천에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는 데 일생을 바친 참된 신자였다. 1999년에는 교구 신자들을 위한 교육과 친교의 장으로 사용할 건물을 성당 근처에 짓고 엄주언의 세례명을 따 ‘말딩회관’이라 명명하였다. 자기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기독교의 근본정신과 100년 전 이웃사랑과 헌신을 몸소 실천하였던 선배 신도의 희생정신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는 요즘이다.

춘천학연구소(262-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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