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

주간 《춘천사람들》은 시민과 동행하는 신문을 표방한다. 훌륭한 미덕이다. 그러나 《춘천사람들》 최상의 가치는 춘천이라는 ‘지역’에 집중하는 언론이라는 데 있다. 너무도 당연해서 불필요한 소리일까? 그게 꼭 그렇지는 않다.

부산·인천·서울·경기도에서 살았다. 대도시 마인드가 깊이 배어있는 수도권 주민이었던 셈이다. 춘천살이는 12년쯤 되었다. 춘천의 삶은 내내 변화무상했고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런저런 의식의 변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지역’이다. 

춘천에서 비로소 지역을 만날 수 있었다. 춘천 서남쪽 한강 하류의 익명성과 숨 막힘 그리고 냉정함에 지쳤을 무렵 만난 지역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동시에 새삼 바라보게 된 것이 ‘중앙’이다. 중앙에서는 중앙을 볼 수 없고, 지역에서만 중앙이 보이는 법이다. 

사전적으로는 사방의 중심이 되는 한 가운데를 중앙이라고 정의한다. 일상에서 중앙이라고 할 때는 정치·행정·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요소의 중심을 통칭한다. 중앙은 사실상 수도 서울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중앙과 서울은 살짝 다른 느낌이다. 

아무튼 중앙이라는 상대를 전제하는 경우에, 춘천은 ‘지역’에서 ‘지방’이 된다. 사전은‘ 서울 이외의 지역’이 ‘지방’이라고 정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역 춘천은 어떤 완결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지만, 지방 춘천은 중앙과의 역학관계 속에 존재한다. 물론 지역이든 지방이든 춘천은 언제나 춘천이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원심력의 지방과 구심력의 중앙, 둘 사이의 관계 문제다. 거칠게 말하면 중앙에 현혹되어 지방의 자존심을 잃지 말자는 이야기다. 경제 분야는 실물이고 현실이니 현혹되고 말고 할 것 없다. 중앙에 현혹되는 대표적인 분야는 정치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과잉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앙정치의 과잉이고, 주범은 언론이다. 라디오든 유튜브든 뉴스든 시사평론이든, 죄다 중앙정치를 실시간으로 반복한다. 매끄러운 언변의 국회의원들을 초청해 말의 성찬을 남발하고, 이제는 SNS에 남기는 한마디까지도 생중계하는 지경이다. 에너지낭비 시간낭비다.

중앙정치에 지방·계급·계층·세대·다양성을 넓고 깊게 포괄하는 민주주의 원리가 충분히 작동하는가? 그런 중앙정치라면 백번 인정하겠으나 어림도 없다. 까칠하게 본다면 중앙정치라는 것은 그저 진영논리에 충실할 뿐인 망국적 세력대결에 불과하다. 그런 부류의 중앙정치가 바른[正] 정치일 리가 없으며 청산할 대상일 뿐이다. 

정치적 냉소나 불신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이라야 비로소 그런 것들이 보이는 법이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정말 쓸데없는 중앙스러운 짓거리들이 지방에서는 훤히 보인다. 원리는 간단하다. 지방이 소외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비유가 아니라 지방의 오랜 현실이다. 정치가들이 입에 달고 사는 ‘민생’이라는 것이 서있기 어려울 정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고로 소외된 사람들의 눈이 더 밝은 법이다. 이를테면 농민의 눈에는 쓸데없는 농정이 보인다. 여성의 눈에는 찌든 가부장문화가 보인다. 청년의 눈은 꼰대를 구분할 수 있으며, 알바생의 눈에는 갑질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지방의 눈은 한심하고 답답한 중앙이 보인다. 이렇게 뭐가 보이는 순간이, 곁다리 ‘지방’이 우리의 ‘지역’으로 전화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곧 갈림길을 만난다. 중앙에 손 벌리고 의존하는 ‘지방’ 종속의 길. 스스로 자립·자생·자조하는 ‘지역’ 자주의 길. 갈림길은 흐릿해서 딱 부러지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다. 시비를 가리기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길은 갈린다. 길 앞에 서서 음미할 옛 말이 있다. 

“말 달리며 들판에서 사냥질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의 행실을 잘못되게 한다.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노자)

지역은 ‘이것’이고 중앙은 ‘저것’이다. 여기 이것은 내 배를 위한 것이며, 저기 저것은 저들이 만든 환상이며 찌꺼기다. 지방이 아니라 지역이다. 지역은 스스로 중앙·중심이 되는 자존과 주체의 이름이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