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탑(비)은 국가나 지방정부에서 특정한 사건이나 장소, 일자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 중의 하나다. 춘천 우두산에는 한국전쟁 당시 강원도에서 전사한 장병과 순직 경찰, 민간인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충렬탑이 세워져 있다. 6월 6일 현충일이면 강원도지사, 춘천시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 사회단체장, 도민 등이 참석하여 매년 추념식이 열리고, 지역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는 고유(告由: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 그 사유를 고하는 의식)의 출발지점이 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90년대까지는 춘천지역 학교의 단골 소풍지이기도 하여 많은 이들에게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까지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한국전쟁 전사자 추념비는 대개 1950년대 지방행정 책임자나 군부대에 의해 충렬탑, 충혼탑(비) 등의 이름으로 건립된다. 충렬탑도 이와 궤를 같이하는데 건립과정을 살펴보면 1955년 최헌길 강원도지사, 송요찬 제3군단장, 최홍희 제29사단장 등이 탑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 동년 1월 16일 기공식을 열고 7월 26일 탑을 완공해 제막식을 거행했다, 제막식은 7월 26일 10시 30분에 이승만 대통령, 이종림 교통부 장관, 이형근 연합참모부 총장 등 고위 인사와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승만 대통령은 치사에서 “강원도민은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영원히 보존하고 유지해야 하며, 나라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산 사람들이 목숨을 내놓고 이것을 보호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했다. 

(왼쪽) 현재 충렬탑(출처=현충시설정보서비스),  (오른쪽)1955년 충렬탑 제막식(출처=국가기록원)

충렬탑은 건평 68㎡ 부지에 기단 높이 12m, 탑 높이 12.8m 규모의 3면으로 설계되었는데 제작 책임을 맡은 최홍희 장군의 회고에 의하면 세 갓은 삼천리 금수강산, 삼각 동체는 삼천만 민족을 상징했다고 한다. 충렬탑 상단에 있는 군인상은 조각가 박칠성(朴七星,1928~2018)이 담당했는데 그는 평양미술전문학교를 나온 피난민 작가다. 미군 군수사령부 화가로 종전하면서 속초의 수복기념탑(1954, 일명 모자상), 대전 충혼탑(1956) 등을 제작하였다. 탑 정면부에 ‘忠烈塔’ 글씨는 원래 오석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던 것인데 말끔하게 갈려 없어지고 그 자리에 동판 부조 형태로 돌출한 글씨가 자리 잡았다. 이유인즉슨 1955년 건립 당시에는 최홍희 사단장이 친필로 쓰고 새겼다고 한다. 그는 태권도 명칭을 창안한 인물로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였는데 박정희 정권과 불화로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하여 시민권자가 되고, 1980년 북한에 태권도를 전파하게 되면서 친북인사가 된다. 이후 정부는 남한에서의 최홍희 관련 흔적을 지우는데 그 대상 중 하나가 충렬탑이 되면서 글씨가 바뀌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으로 520만 명의 인명 손실과 한반도의 사회·경제적 기반은 철저히 파괴되었다. 충렬탑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선열들의 충고가 담긴 상징이기도 할 것이다.

춘천학연구소(262-5105)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