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view] 붓끝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다
[人터view] 붓끝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다
  • 이경애 시민기자
  • 승인 2020.09.21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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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작가 권매화

“붓을 들면 한없이 빠져들죠. 새벽 네 시까지 그림을 그리는 건 거의 일상이에요. 남편은 이런 나를 보면서 ‘미쳤어, 미쳤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래도 나는 붓을 들었을 때 제일 행복하고 가장 ‘나’다운 것 같아요. 민화는 나의 인생이고 삶이고 ‘나’ 자체라고 생각해요.”

지난주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작년인가부터 민화를 시작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친구의 그림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는데, 자기 스승님이 전시회를 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민화라니! 잘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그쪽으로는 무식자라 해도 무방할 내가 무슨 민화를? 하고 생각했지만, 집에만 있기에는 하늘이 사무치게 파랬고, 바람은 가슴 뛰게 부드러웠다.

민화작가 권매화

그렇게 만나게 된 민화장 권매화 선생. 춘천 어디서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그런 사람. 첫인상은 그랬다. 그는 어디서 어떻게 민화를 만났을까?

“나는 삼척 두메산골 여자예요. 그림이라든가 이런 건 뭐 전혀 알고 살질 않았지. 그냥 그렇게 보통 여자로 살다 결혼을 하고 평창에서 살게 되었는데, 청소를 하다가도 답답하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갑자기 쓸쓸해지고, 왜 그렇게 허전하던지…, 늘 가슴 한켠이 비어 있는 것 같은 거야. 그래서 신문지를 펼쳐놓고 붓을 잡고 한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우연찮게 한동네 사시던 죽헌 김진호 선생을 만나게 된 거야. 선생님 그림이 하도 보기 좋아서 ‘선생님 그림 한 장만 선물로 주세요’ 했더니 선생님께서 ‘달라 하지 말고 배워’ 그러시면서 종이하고 붓을 사서 선물하셨어요. 조금 싹수가 보였던지? 그렇게 문인화를 시작했어요. 1년을 배우고 나서 효석문화제에 작품을 냈는데 덜컥 차상을 따내고는 다음 해, 그러니까 배운지 2년 차에 장원을 해버렸어요. 그때 선생님이 엄청나게 칭찬을 해주셨지.”

그렇게 문인화를 시작한 그는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춘천으로 오게 된다.

“춘천에서는 시백 안종중 선생님께 배웠어요.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난(蘭) 한 번 쳐봐’ 그러시기에 그렸는데 그걸 사진을 찍어서 보내시는 바람에 얼떨결에 ‘강원미술대전’에서 특선을 하게 됐어요. 그때 강원대학교 교수님 한 분이 내 그림을 며칠을 두고 보고, 보고, 하시다가 그림을 사시겠다고 그러셔서 그림을 가지고 갔는데 백만 원을 주시는 거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많은 돈은 싫어요!’ 그랬어요. 17년 전인가 그러니까 큰돈이죠. 그래서 사십 만원을 돌려 드리고 돌아왔어요. 행복했어요. 돈이 아니라 내가 인정을 받았다는 게. 시백 선생님께는 행초서를 배웠어요. 작품을 내놓으면 꼭 화제畵題를 쓰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때 체계적으로 글씨 공부를 하지 않은 게 후회가 되기는 해요. 행초서만 배워서 그런지 8년을 했는데도 아직 제대로 못 써요.” 

좌측은 본인의 작품 <화성 능행도> 앞에서 포즈를 취한 권 작가. 우측은 권 작가의 작품 <월매도>

문인화를 하던 그가 민화로 새로운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왜였을까? 흔히 우리는 민화를 문인화보다는 한 단계 낮춰 보는 경향이 있는 것이 현실인데….

“시백 스승님께서 서울로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마흔아홉 나이에 경희대 석사과정을 시작했는데, 춘천에서 다니다 보니까 항상 일찍 가게 되는 거예요. 그 시간이 아까워서 늘 인사동 화랑을 기웃거리곤 했는데, 어느 날 한 화방에 들어가서 주인한테 요즘 경향은 어떤가 물었어요. 그랬더니 민화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시회를 들어가 봤더니 기존에 내가 생각하던 민화가 아니야. 울긋불긋하고 촌스럽고 그런 게 아니더라는 거지. 나는 그 색감에 빠져버렸어요. 그 화려함의 깊이가 정말 오묘하거든! 그래서 교수님한테 민화를 하고 싶다고 했죠. 그랬더니 여러 선생님을 소개해 주시는데, 그중에서 예범 박수학 선생님이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그분 밑으로 들어가 꼬박 8년을 공부했어요. 춘천서 서울로 다녔지만, 하루도 빼먹은 날이 없어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갔어. 삼년이 되니까, 선생님이 내려가서 제자 양성하라고 하시는데 싫다고 하고는 더 배웠어요. 완벽해지면 내려간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배우다 2016년에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궁중장식화’ 전시회를 하게 되면서 내려왔지요. 개인 권매화는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만큼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내가 할 일은 후배들을 위한 배경이 되어주는 일이죠. 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우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민화를 함께 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고 싶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것은 그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음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예순의 고개를 마악 넘은 나이의 그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난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이에요. 즐겁게 사는 건 간단하죠. 먼저 화를 내지 말아야 해요.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 하고, 그리고 세상과 사람을 측은지심을 갖고 바라볼 줄 알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인생, 너무 짧은데 아등바등할 것이 뭐 있겠어요? 좋은 사람 만나면 밥 한 끼 같이 먹고, 여유가 된다면 차도 한 잔 나누고 그러다 술도 한 잔 마시고…, 그렇게 살면 충분하지요. 모든 창작 활동이 힘을 빼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인생에서도 조금만 힘을 뺄 수 있다면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마음 속에 세분의 스승(죽헌, 시백, 예범 선생)을 늘 새기고 산다는 그는 지금도 눈만 뜨면 수업하는 시간 빼고는 그리는 일만 한다고 했다. “요즘은 해바라기를 주제로 많이 그리고 있어요. 민화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라면서도 인간 ‘권매화’의 1번은 언제나 민화일 것이라고 했다. 

“혹시 선생님 성함은 본명이세요?”하고 물었다. 처음부터 매우 궁금했었다. 

‘권매화’는 그의 본명이라고 했다. 묘하게 그가 하고 있는 일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술을 마셨을 때는 홍매요. 깊은 밤 달 아래서는 백매로구나!”라고 감탄했다는 서울대 모교수의 말처럼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이름이 함께 찬란하기를 기원하면서 밤이 늦어 못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민화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담은 그림이자 세계 최초의 대중그림이다. …(중략)… 민화에는 시점이 흐트러져 공간이 뒤틀리고 봄꽃과 가을꽃이 동시에 표현되는 시간의 오류가 천연덕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이것을 마치 어린아이가 제멋대로 그린 것처럼 유치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런 화면 구성은 철저하게 확대원근법의 조형원리에 따른 것이다. …(중략)…확대원근법은 고구려 고분벽화나 알타미라 동굴벽화에서부터 출발해 현재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조형원리다. 민화는 어설프게 그린 그림이 아니다. 민화는 인류보편적인 미학과 조형원리를 품고 있다. 또한, 민심을 얻고자 했던 정조의 개혁정치와 조선 최고의 화가이자 세계적으로 위대한 화가 중의 한 명인 단원 김홍도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최고급의 문화와 백성의 욕망이 결합하여 세계 최초로 미 술의 대중화에 성공한 것이다.”(발췌-아름다운 우리 그림 시리즈 1권 「민화」 /심규섭)

어설프게 아는 척하고 싶어지는, 잘 모르겠는 서양화가의 그림보다 우리의 민화가 얼마나 사람과 가까운 그림인지를 배웠던 시간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던가? 슬그머니 민화를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 배워도 늦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매화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절대 늦지 않았다고!

이경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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