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옥균, 고 황용국, 고 권석도 님, 합동영결식
“물에 빠진 사람 두고 갈 수 없다”며 뱃머리 돌려

아버지 안녕하십니까? 이제 그곳은 춥거나, 고단하진 않으십니까?

아버지, 사실은 많이 그립습니다. “우리 딸이 환히 웃을 때면, 아빤 피로가 다 풀려”하며 까무잡잡하고 주름진 얼굴로 아이처럼 행복해 하시던 것도, 살다가 지치고 상할 때, 세상 무엇보다 든든한 편이 돼 한없는 위로와 웃음으로 안아주셨던 그 살가움도 너무 그립습니다.

지난 20일 의암호 사고로 인해 희생된 고 이옥균, 고 황용국, 고 권석도 님의 합동영결식이 춘천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번 삶은 어떠셨습니까? 고단하진 않으셨습니까?

평생을 자신보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 봉사와 사랑을 실천한 삶이었지만, 아버지의 답변은 늘 그랬듯 땀에 젖은 자율방범대의 제복을 입고 “아빤 행복해. 좋아, 좋아.”라고 답변하실 것이 선합니다.

세상 사는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말로 멋지셨습니다. 이젠 아버지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됐으니, 저희는 이만 물러나 그 길을 축복하려합니다. 다시 만날 때 저희가 정말 자랑스러워 기뻐 뛰며 마중 나오시도록 이 생을 살겠습니다.

-고 권석도 님 가족대표 고별사 중 일부

 

의암호 사고로 인해 희생된 고 이옥균, 고 황용국, 고 권석도 님의 합동영결식이 지난 20일 춘천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춘천시자율방범연합대가 도열한 가운데 운구차가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이재수 춘천시장의 조사, 동료의 추도사, 유가족의 고별사가 이어지면서 광장은 금세 눈물바다로 변했다. 이 시장은 “경찰선이 전복되자 철수 중이던 환경감시선은 뱃머리를 돌려 구조에 나서며 희생됐다”면서 “철수를 감행해 생존했어도 아무도 손가락질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그 작고 힘없는 배를 돌려 공포스러운 물살 속으로 의연히 돌진했던 다섯 분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을, 세상이 꼭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과 춘천시청 환경과에서 기간제 동료 직원으로 일해 온 안동원 씨는 추도사를 통해 “평범하고 평화롭던 일상이 그립다”면서 “서로를 구하려다 희생된 우리 이옥균, 황용국, 권석도를 기억해 달라. 폭우와 댐 수문 앞에서도 목숨을 걸고 동료를 구하기 위해 의연히 돌진했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추모곡 연주와 헌화 및 분향이 이어지면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 의암호 사고 희생자 약력

△고 이옥균 님은 1952년 2월 2일 생으로 평창고등학교, 한림성심대학교를 졸업했고, 1979년 5월 16일 공직에 입문했다. 34년간 공직에 몸담았고, 2003년부터 약 8년간 환경과에서 환경보호와 야생동물 보호업무를 수행하여 환경보전에 헌신했다. 퇴직 후에도 춘천시 호소·하천변쓰레기 수거사업 수거원으로 활동했으며 2019년도에는 반장으로서 타 반원에 모범을 보이며 춘천시 하천 환경에 크게 기여했다.

△고 황용국 님은 1964년 10월 21일 생으로 강원중학교, 춘천고등학교, 동우전문대학을 졸업했다. 군인이시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와 바닷가에서 생업을 꾸리며, 대학 시절부터 20년 가까이 수상안전을 위한 활동과 인명구조 활동을 해왔다. 2017년도부터 춘천시 산림 및 수질환경과 도시환경 개선을 위해 활동했다.

△고 권석도 님은 1964년 1월 5일 생으로 효신상업전수학교를 졸업했다. 신한은행과 인성병원에서 재직했으며, 20여 년간 퇴계동 자율방범대원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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