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춘천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 센터장 신진섭
제대로 나눌 줄 아는 사람
가치있는 시간 쌓아가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은 지는 좀 됐다. 조카들에게 배달된 농산물 꾸러미를 열어 본 기자의 어머니가 감동해서 인증사진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뉴스를 먼저 보고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지나쳤던 것이 훌륭한 꾸러미로 날아왔다. 노련한 주부들에게는 신선, 깔끔, 환경을 고려한 결과물로 인증 받았을 터였다. 꾸러미를 만들어 보낸 (재)춘천지역먹거리통합지원센터(이하 센터)의 신진섭 센터장을 만나봤다.
‘춘천 학생 가정 농산물 꾸러미’와 농촌
“코로나19로 인한 가정과 학교의 어려움을 해소할 방법을 고민하다 시작했어요. 많은 지자체에서 고민할 거예요. 문제는 어떻게 보낼 것인가죠. 지역 생산물로 가자. 친화경적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안전·안심·신선을 기본 컨셉으로 전략을 세웠죠. 결론은 학부모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내자. 3만 3천개 정도를 보내는데 당일 생산된 농산물로 당일 작업하려니 하루에 2천개 정도를 만들어야 했어요. 보냉박스, 물을 채운 아이스팩, 재활용이 안 되는 은박지 대체품을 준비했습니다. 하루에 17가지 종류 2천개를 소분해야 하고, 5만 원에 맞춰야 했고요. 또 오전 10시까지 택배회사에 갖다 줘야 당일 가정에 배달되니 우리가 직접 배송도 하자 했어요. 소분해서 소포장하는 작업을 시작해서 4주 가까이 하니 1분에 15개가 라인업 되더라고요(웃음). 지역부녀회, 농민들, 센터 직원들, 대학생들이 함께 했어요.”
작업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도 엄청 빨랐다. 쉼 없이 타이핑하니 5월 꾸러미 상황이 글자로 포장되는 것 같았다. 어떤 이는 좋은 것이라 생각만 하는 것을 어떤 이는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이런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생각해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의지죠, 의지!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내니 직원들이 죽는 거죠(웃음). 현재는 모든 농가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농사지어 중앙으로 올리면 그것이 상업망을 타고 다시 지역으로 유통되는 시스템이에요. 그런데 농산물 파동이 끊임없이 터지잖아요. 안정된 가격으로 농산물 제값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이런 구조가 불합리한 거죠. 거기에 40%만 국산으로 해결하고 60%는 수입으로 채우는 불안정한 구조고요. 센터를 만든 이유가 지역 생산물 유통경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중앙까지 올리지 못하는 소규모 농가들을 찾아 조직화하고 생산품목을 다양화하고,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예요. 그 누군가는 해야죠. 춘천시민들이 먹는 식재료가 연간 3천억, 학교 급식시장 농산물은 30억 정도예요. 최소 이것만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계획생산과 선주문 개념이라 가락시장 낙찰에 목을 맬 필요가 없는 구조요.”
이 길로 걷게 된 시작점
“농업이 아닌 건축을 전공했어요. 건축설계로 6년 근무하다 결혼 3년차에 아이들 3명이 돼서 10개월 알바하며 육아를 함께 했어요. 그러다 초록바람 환경모임에서 만난 선배가 인터넷 이장을 하고 있는데 도와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2000년에 춘천으로 이주해서 (주)이장의 기획이사를 맡게 됐어요. 농촌마을의 이장님들을 돕기 위해 5명의 핵심 멤버로 시작해 사회적기업으로 2007년에 인증도 받았어요. 농촌활동과 사회적경제를 병행해서 활동하다가 적자 폭이 누적돼서 2016년에 접었습니다. 건축하던 사람이 농촌지역 돕는 일을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건축 환경도 좋지는 않았지만 농촌은 더 불모지인 거예요. 10년 동안 농촌을 다니다 보니 대한민국에 그 분야 전문가는 저밖에 없더라고요. 농촌에서 범위가 사회적경제로 넘어가고요. 10년의 경험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지역에 재능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연하게 시작해서 20년이 흐른 지금 여기까지 왔다. 농촌지역에 사람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이장으로 출발한 고민의 흔적이 사회적기업인 ‘소박한 풍경’, ‘강원곳간’으로 남아 있다.
이어지는 이 길의 모습
점이 2개 이상이면 그 사이를 이어 선을 만들 수 있다. 우연한 만남에서 농촌과 사람이라는 점들을 이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 향후 계획을 물으니 개인적인 것은 모르겠고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답한다.
“춘천의 센터가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늦었지만 다른 지역보다는 빠르거든요. 구조는 화성 보다 튼튼하게 잘 짰다, 전국적인 모델이 되면 좋겠다! 합니다. 그래야 다른 지역이 좀 더 쉽게 가죠.”
통합지원 구조는 현재 춘천, 화성, 전주 3곳이다. 그 중 화성푸드통합지원센터에서 로컬푸드 관련 실무 경험을 쌓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왔다. 춘천에서 먹거리의 자립적 순환경제 사업 모델을 창출하여 전국에 영향을 미치기를 소망한다.
“환경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어요. 급격한 기후변화로 농사 절반이 망가지고 있거든요. 공급채널도 무너질 거고요. 그래서 하나하나 준비해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환경, 기후문제를 계속 고민하며 10년 대비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해요.
20년 뒤에는 지금의 가치로 먹거리를 못 살 겁니다. 먹거리 격차가 더욱 심각해지는 거죠. 농산물 자체를 구하기 어려울 거예요. 대구, 문경사과가 거의 없어요. 이미 양구수박, 철원사과로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뒤집히는 점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 엄청난 변화가 작은 일들에서 시작될 수 있고 대단히 급속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에 서 있는 그를 만나 감사하다. 미래를 위한 준비는 아무리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막막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한국 아니 춘천으로 좁혀 본 농업, 환경,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가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그가 실천하고 있는 이 길을 통해 희망을 가져본다.
“남들이 안했던 것을 20년 동안 해봤어요. 최저임금수준으로 일하는 직원들에게 지금 이 시간을 팔지 말고 가치를 쌓아보자고 합니다(웃음). 장과 김치 담그면서 먹이는 가정이 거의 없잖아요. 전통의 식생활이 무너진 거죠. 급식이 단순히 먹거리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급식 시간에서만이라도 전통 음식문화를 전달해 보고 싶습니다. 공장에서 찍어 낸 것이 아닌 장독대에서 만들어진 지역 먹거리를 아이들에게 주고 싶어요. 음식이 지켜지고, 만드는 사람들의 업이 계속되게 하는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이런 고민과 생각들이 관계된 분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래봅니다.”
“내 얘기를 하고 나면 항상 걱정이 됩니다. 다 빼고 센터 이야기만 해주세요.”
“환경을 보호하는 일, 다음 세대를 위한 작지만 위대한 실천입니다.” - 학생 가정 농산물 꾸러미’ 포장에 적힌 문구 중 일부
“당신 주변을 둘러보라. 당신 주변이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무자비한 공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적소(適所)를 찾아 조금만 힘을 실어주면 일순간에 바뀔 수 있다.”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 1963~)
백종례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