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기자

2020년 9월 판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최신 로봇 산업의 현황을 다룬 ‘로봇의 시대가 도래하다’라는 특집기사가 실렸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당신은 로봇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만나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은 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산업용 로봇에서부터 의료용 로봇까지 현재 실생활에서 인간의 삶과 접목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머지않은 미래의 세상을 상상하게 되었다. 글쓴이는 세계적 유행병이 시작되면서 로봇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일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러다이트 운동을 떠올리게 된다. 인간이 로봇을 상대로 일자리 경쟁을 하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해 문득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시간과 일의 효율성, 줄어드는 출산율을 생각해보면 로봇의 출현을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지도 모른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농경사회 이전에 실행하던, 행복한 수준의 노동시간을 주당 15시간 내외로 보고 있다. 이는 실제 아마존의 부족원들이 사냥이나 채집에 투자하는 시간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거칠게 계산해서 주당 50시간에 달하는 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반으로 줄인다면 어떨까? 일자리는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고, 로봇으로 인해 일의 효율성은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또 로봇이 생산에 참여하는 대신 인간은 지속가능한 소비에 집중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짧게 일하고 길게 즐길 수 있도록 일의 재분배가 획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로봇이 실제로 생산에 투입된다고 할지라도 개인적인 측면에서는 생활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봇의 혜택을 받는 분야나 산업계층이 고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로봇으로 인해 발생하는 극대화된 효율성을 분배한다는 측면과 인간이 소비자로서의 경제주체로 확립한다는 두 가지 측면에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지난 7일 강원도청 앞에서 농민기본소득강원운동본부 출범식이 열렸다. 고통 받고 있는 농민부터 먼저 기본소득의 개념을 적용해보자는 주장이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될 즈음의 미래를 한번 상상해 본다. 오전에 서너 시간 정도 일하다가 오후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더 다양한 동물들이 춘천에 머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론한다. 소비를 할 수 없는 로봇을 대신해, 월말이면 개인별로 지급된 기본소득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인구수는 확연히 줄었지만 노동력 부족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다. 수소를 사용하는 농업용 로봇 1대가 수천 평의 농지를 관리하니 말이다. 이런 미래를 꿈꾸는 것은 그야말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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