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 (고탄리 숲지기)

잠자리가 자주 불시착을 시도하고 매미 노래도 어느새 가녀린 독창으로 바뀌고 빨간 피, 아찔한 향과 정념으로 불타던 들꽃들이 져가고 있다. 뒤를 이어 중년처럼 은은한 향이 있고 고상한 색의 꽃들이 한창이다. 이런 가을꽃들은 다 연푸른 하늘색을 닮은 것 같다. 화려하지 않다. 지금은 벌개미취와 쑥부쟁이가 피고 산국이 마지막 출연을 위해 메이컵 중이다.

연일 계속되는 맑은 햇살은 모래무지가 깨끗하게 닦아 놓은 시내의 모래알처럼 반짝인다. 그 덕에 30리 밖쯤의 화악산이 거울에 비친 듯 바로 코앞이다. 지금은 일 년 중 가장 햇살이 자애롭고 따사로워 감사 할 때다. 햇살 미치는 곳 어디나 축복처럼 은혜로 충만하고 가을 색 짙은 산과 호수와 드라이브 길들이 하늘과 어우러져 그림 같다. 마치 한 폭의 동양화  속을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이런 날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떠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고 누군가를 만나지 못할 것 같다. 아주 못 볼 것 같다.

올 해는 도토리, 밤, 잣 등이 풍성하지 못하다. 비가 너무 많았기에 결실이 덜 된 것 같다. 가을인 지금은 가물어 버섯이나 다른 열매 등이 신통치 않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송이나 능이 등은 나오다 말았고 산속엔 목마른 것들의 아우성이 가득하다. 낙엽에선 먼지가 펄펄 나고 독나방 가루인지 나무 잎에서 나오는 건지 온몸이 가렵다. 해마다 이렇게 세계 여러 나라에선 가뭄과 폭우의 기상 이변이 연속해 뒤숭숭하다.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가는 기후를 보면 우리에게 미래나 있는 것인지 불안하고 암울하다.

배초향이 피었다 지니 꽃 향유가 피고 구절초가 핀다. 꽃은 필 때 피어 저리 웃고 자연의 질서를 좇아 향기로운데 우리 사람들만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고 있다. 오염과 파괴로 스스로를 멸망의 길로 이끌고 있다. 왜 사람만이 자연이 모든 생명체들의 모태인지 모를까, 절망감이 든다. 세상에 자연을 파괴하는 동물이 어디 있는가, 인간들 외엔. 

자연과 함께하는 삶, 그 길을 꼭 실천케 하는 산교육이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 인간들은 그저 생존만을 위한 교육을 하고 있을까? 정치하는 자들의 우민정책이란 것을 알면서도 비판 능력, 지식과 교양 등을 쌓는 배움과 독서를 안 하고 그저 본능만 좇아 살아갈까?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자기 사는 곳과 자기 생명을 갉아 먹는 동물은 인간뿐이라는 생각에 그저 하늘을 쳐다보며 정말 원죄란 있는 것인가 묻게 된다.

그러나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등 관광 선진국들의 자연보호 정책을 보면 어찌 같은 인간들끼리 의식으로나, 지적으로나, 교육 수준으로나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람이 자연에 순응해 살고 품에 안겨 사는 것이 본능이고 순리이건만 이것마저 잊고 사는 우리를 비롯해 우리와 비슷한 나라들 때문에 지구가 불안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학력이 높으면 무엇 하나,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불행한 우리나라고 먹는 것만 해결된 야만국인데. 정말 교육다운 교육, 모두의 상생을 위한 자연과 윤리 교육 같은 산 공부를 중요시 하는 때는 언제쯤 올까. 

가을 들국화 앞에서 국화 한 송이보다도 못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 심사가 복잡해진다. 하산 길, 사람 사는 곳이 가까워지기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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