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오랜 대중음악 애호가)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장면마다 춤을 추는 카메라와 함께 관객에게 말을 걸고 호소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국내 개봉한 영화에 쓰인 곡 가운데 모차르트 음악을 대중화한 대표곡은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2악장 안단테’다. 스웨덴 영화 <Elvira Madigan(엘비라 마디간)> 주제곡으로 쓰인 작품이다. 불륜을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없지만 상류층 귀족과 서커스단 여인과의 도피 행각은 모차르트 음악과 함께 슬프게 펼쳐진다. 마지막 두 연인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음악은 둘 사이를 떼어놓지 못하고 아픈 결말로 막을 내리지만 영화는 끝내 아름답다. 감독은 영화 속 모든 형상을 음악으로 표현했다. 

시나리오 작가는 음악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예술적 감각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데, 모차르트 음악은 수많은 주제에 잘 어울리는 길잡이로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미완성 작품인 진혼곡(레퀴엠)은 많은 영화에 삽입되어 알게 모르게 듣게 되는 곡이다.

1986년 아카데미 상을 8개 거머쥔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가 개봉했다. 동시대에 활동한 살리에리, 모차르트, 두 음악가의 질투, 반목, 독살설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정신병원에 갇힌 말년의 살리에리가 신부에게 고해성사하듯 지난날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남우 주연상을 받은 살리에리 역의 F. 머레이 아브라함의 수준 높은 연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에 다시 한 번 열광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좋은 영화 한 편은 10권의 책에 버금간다는 평소 생각에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데우스>만큼 인물의 재해석에 성공한 작품은 흔치 않다. 여기에 감독 밀로스 포먼, 지휘자 네빌 마리너가 섬세하게 선정한 곡이 상황에 따라 요소요소에 치밀하게 배치돼 음악 영화로는 전에 없던 부와 성공을 낳았다. 평소 듣는 모차르트도 대단 하지만 음악을 전면에 내세워 이야기 원동력으로 사용해 완벽한 구성을 만들어낸 것에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화려한 궁중 실내 볼거리와 소품, 의상, 음악을 극적 상황에 매우 정교하고 섬세하게 쓴 감독 밀로스 포먼의 재능은 한마디로 놀라울 정도다. 이런 영화 2시간 40분간 흐르는 주옥같은 음악을 글로 다 설명하는 건 무리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궁중 전속 음악가로 존경받는 음악가였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등장 이후 창의적인 그의 예술감각은 보잘 것 없이 평범한 수준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루아침에 보통사람이 겪게될 끔찍한 현실을 마주하며 슬픔, 절망에 빠진다. 모차르트의 초고 악보를 뒤적이며 절망, 분노, 질투로 표정이 일그러질 때 흐르는 “미사곡 C 단조 K.427”은 둘 사이에 비극의 강이 흐를 것이라는 감독의 복선이다. 십자가를 화롯불에 불태우고 “당신의 피조물에 복수한다”는 독백은 두 주인공의 앞날을 예고한다. 무능한 불행을 온몸으로 깨닫는 동시에 젊고 무례한 모차르트에겐 질투와 경멸의 시선을 보내고 신의 불합리한 선택을 저주하며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내모는 악역을 자처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휠체어에 의지한 살리에리는 관객을 안을 듯 두 팔을 벌리며 “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대표”라며 끝을 맺는다. 모차르트는 말년에 극심한 재정적 고통과 투병으로 죽음을 맞이하지만 엔딩 곡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 2악장 안단테”는 갈등과 번민의 영화 줄거리와는 달리 우아하고 아름답다. 모차르트의 영민함과 천재성은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객석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은 영화, <아마데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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