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

가끔 놀란다. 내 속에 있는 이른바 ‘꼰대’스러움을 확인하게 될 때, 흠칫 놀라게 된다. 대부분 누군가의 지적 덕분이다. 정확하게 분석 당하는 경우도 있고, 은근한 뼈 있는 농담도 있다. 책이나 페이스북을 읽다가 아차 싶을 때도 있다. 

놀라면서도 속으로는 안도한다. 조금이라도 깨우쳤다면 아직은 변화의 가능성이 있으니 다행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훗날, 자칫 찰나의 깨우침마저 불능의 상태가 되는 날. 내 딱딱함이 누군가에게 상처만 줄 뿐인 날. 그런 날까지 꾸역꾸역 살게 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거피취차(去彼取此)는, ‘저것은 쓸데없으니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는 말이다(노자). 어렴풋이 알아들을 뿐,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알쏭달쏭하다. 대체 저것은 무엇이고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무엇과 무엇을 구분하라는 소리인가? 저것은 안 좋다는 것인가 아니면 안 좋은 것을 저것이라고 칭하는가?

‘꼰대’라는 키워드로 생각해보자. 꼰대는 저것에 붙들린 사람이다. 흔히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되는 그 낡은 수다 덩어리가, 쓸데없으니 버려야(去)할 저것(彼)이다. 그 저것을 버리지 못한 사람이 꼰대다. 흘러간 구닥다리 저것에 대한 회상이나 일삼으면 꼰대스러운 것이고, 나이나 권위 같은 사회적 힘으로 강요한다면 정확하게 꼰대다. 

‘보수와 진보’라는 키워드로도 생각해보자.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은 단순명료하다. 변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기준이다. 변화는 우선 자연(외물)의 변화가 있고, 인간(사회)의 변화도 있다. 

자연의 변화는 긍정적·부정적 변화를 다 포괄한다. 완연한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만물이 수렴하면서 신진대사가 느려지는 겨울이라는 사태는 부정적 변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을 겨울로 받아들여야만, 새로운 봄이라는 긍정적 변화를 기약할 수 있다. 따라서 사계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식과 태도가 진보다.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는 무지나 억지일 뿐이다. 자연에 기대어 살았던 옛사람들은 변화를 긍정했기에 진보적이었다. 이제 겨울이 오면 겨울(此)을 잘 맞이하면(取) 된다. 

오늘 인간과 사회의 문제가 어려운 까닭은, 복잡다단한 변화 양상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꿈꾸고 기대하는 변화는 긍정적이어야만 한다는 전제 때문이다. 예컨대 청소년 세대가 과거보다 부정적으로 변하거나 춘천이 과거보다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계절의 변화처럼 마냥 수긍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어떤 이들에게는 긍정적인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부정적이다. 이 충돌을 조율하는 것을 정치라고 한다던가. 

옛 스승들은 이 정치적 문제를 두고 고심을 거듭했으며, 우리는 그 고심의 흔적을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읽기도 한다. 인간은 불안정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고 닦는다면 훨씬 밝고 건강한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기도 했다(맹자). 인간은 불안정하지만 꾸준한 교육을 통해서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이며 혼란한 사회도 가다듬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순자), 인간은 불안정하지만 하늘의 뜻을 받들어 사회적 자산을 공정하게 분배하고 평화롭게 재조직화하면 긍정적인 사회로 변할 수 있다고 믿기도 했다(묵자). 2천5백 년을 건너 옛날 스승들은 인간의 변화를 믿었고 사회의 변화를 열망했으므로 진보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춘천을 걱정한다. 조금이나마 발걸음을 뗀 정치적 진보가 여기저기서 삐걱거린다. 그건 맞다. 그러나 지금 춘천에서는 작고 진솔한 행사·교육·모임·조직이 존재한다. 코로나 비대면의 제약 속에서도, 조금 더 나은 춘천의 변화를 묻고 논하며 엿보는 움직임들이 있다. 바로 여기 이것들이 있으니, 사람들이다.

저것이든 이것이든 다 일리가 있다. 저기 저것도 한때는 여기 이것이었으니, 여기 이것은 조만간 저것이 될 운명이다. 아무튼, 항시 저것보다는 이것에 주목하라는 권유다. 나름 진보적인 시정? 그래도 나은 시장? 그나마 괜찮은 당? 세계 제일의 협동조합 도시나 시민이 주인인 도시 등등의 슬로건? 그런 것들이 저것(彼)이다. 우리가 품고 기댈 이것(此)은, 마스크 넘어 눈빛을 교환하는 나의 이웃 춘천사람들이 가져올 변화뿐이다. 사람과 변화에 희망을 거는 것이 인간의 진보, 춘천의 진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환해지는 것은 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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