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시 관형사 ‘이/그/저’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저’ 하잘것없는 한송이의 달래꽃을 두고 보드래도, 다사롭게 타오르는 햇볕이라거나, 보드라운 바람이라거나, 거기 모여드는 벌나비라거나 ‘그’보다도 ‘이’ 하늘과 땅 사이를 아렴프시 이끌고 가는 크나큰 ‘그’ 어느 알 수 없는 <마음>이 있어, 저리도 조촐하게 한 송이의 달래꽃은 피어나는 것이요, 길이 멸하지 않을 것이다.// 바윗돌처럼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저’ 애잔한 달래꽃의 긴긴 역사라거나, ‘그’ 막아낼 수 없는 위대한 힘이라거나, 이것들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모든 것을 내가 찬양하는 것도, 오래오래 우리 마음에 걸친 거추장스러운 푸른 수의를 자작나무 허울 벗듯 훌훌 벗고 싶은 달래꽃 같이 위대한 역사와 힘을 가졌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요,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송이의 달래꽃을 두고 보드래도, 햇볕과 바람과 벌나비와, 그리고 또 무한한 <마음>과 입맞추고 살아가듯, 너의 뜨거운 심장과 아름다운 모든 것이 샘처럼 왼통 괴여 있는, ‘그’ 눈망울과 그리고 항상 내가 꼬옥 쥘 수 있는 ‘그’ 뜨거운 핏줄이 나무가지처럼 타고 오는 뱅어같이 예쁘디 예쁜 손과, 네 고운 청춘이 나와 더불어 가야 할 ‘저’ 환히 트인 길이 있어 늘 이렇게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요,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신석정의 <역사> 전문)

이 시를 낭송할 때 흔히 나타나는 오류는, 지시 관형사 ‘이/그/저’를 읽을 때다.

‘이’는 단음으로 짧게, ‘그’는 반장음으로 조금 길고 세게, ‘저’는 완전장음으로 온전히 길고 세게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그/저’가 원래의 기저장음(=어휘적 장음)이 아니어서 일반적 국어사전에는, 장음 표시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표현적 장음을 표시한 《연세한국어발음사전》에도 아주 미미하게 다룰 뿐이다. 현재로선 사전에서 충분하게 표현적 장음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 한국어에서 기저(=어휘적)장음은 점차 약화되는데 반해, 표현적 장음은 차츰 확대돼 사용하는 추세라는 점이다. 따라서 표현적 장음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는 단음으로 짧게 읽어야 하지만 ‘그’는 ['그·]처럼 조금 길고 강하게, ‘저’는 ['저:]처럼 길고 강하게 읽어야 한다. 국제음성기호로서 [ː]는 완전장음, [ˑ]은 반장음을 나타낸다. 장음은 음절 오른쪽에 표기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어휘적 장음’과 ‘표현적 장음’을 구별하기 위해 표현적 장음에는, [·]와 [:]를 사용할 것이다. 장음에는 강세가 붙는 것이 어법의 원칙이다.

[']는 강세를 나타내는 국제음성기호다. 강세는 장음 음절 왼쪽에 표시된다. 따라서 그는 ['그·], 저는 ['저:]라고 표기된다.

또 하나의 오류는, ‘지시 관형사의 포즈’에서 나타난다. 먼저 붙여 읽어야 하는 경우는, ‘관형사 뒤에 바로 명사가 이어지는 경우’다. “이 하늘과” “그 눈망울과”에선 붙여 읽어야 한다. “그보다도”처럼 붙여 쓰인 경우에는, 오류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문법과 어법이 다른데도 대부분 띄어쓰기대로 띄어 읽기 때문이다. 쓰기는 문법에, 읽기는 어법에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형사와 명사 사이에 수식어가 있는 경우’다. 이때는 띄어 읽어야 한다. “저 하잘것없는 한송이의 달래꽃” “그 어느 알 수 없는 마음” “저 애잔한 달래꽃의 긴긴 역사” “그 막아낼 수 없는 위대한 힘” “그 뜨거운 핏줄” “저 환히 트인 길”에서 지시 관형사 ‘저’ 다음에 띄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즈는 리듬과 전달력의 문제와 긴밀하게 결합해 있어서 포즈의 오류는, 리듬의 오류와 전달력이 떨어지는 문제까지 낳는다. 포즈는 전달력과 리듬을 살려내는 질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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