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바람이 제법 차갑게 느껴지는 시기가 되면 봄에 심고 여름에 김맸던 작물을 거두어들여야 한다. 수확하는 일은 작물에 따라 다르고 수확 후 보관하는 방법 역시 서로 다른 기구와 방식을 쓴다. 벼는 뒤주나 가마니에 보관하고 콩은 가리를 만들어 말리고 옥수수는 우리를 만들거나 처마에 매어 보관한다. 식용으로 쓸 옥수수와 다음 해에 종자로 사용할 옥수수를 다르게 보관하는 것이다.

타작, 또는 마당질은 논이나 밭에서 거두어들인 작물의 낟알을 터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마당질은 작물을 집 앞마당에서 털었던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당이 아니라 농지에서 바로 털 때는 들마당질이라고도 불렀다. 곡식을 터는 일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말이 있는데 이삭이 바짝 말라야 낟알이 잘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적 풍속화로 유명한 조선 후기 김홍도 화가의 그림에는 지금은 생소한 타작과 마당질들이기를 하며 추수를 마감하는 농부들의 마음을 잘 엿볼 수 있다.

요즘에는 비닐과 같은 포장재를 땅에 펼쳐서 사용하기에 마당질 뒤에 낟알을 정리하기 편리하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멍석조차 귀하였기에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맨땅에서 바로 낟알을 털었다. 따라서 낟알을 털기 전에 마당을 정리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당을 평평하고 고르게 한 후 또 단단하게 다져야 비로 쓸어 담아도 흙이나 돌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마당질들이기라는 이름에서 일의 성격이 드러난다. 강원 지역에서 조사된 명칭을 보면 곡식을 털 장소에 따라서 흙다지기, 마당질피기하기, 마당공그기, 마당바르기, 마당곱게하기, 마당질넣기, 마당흙들이기, 마당밟기, 마당보토하기 등 다양하게 불렸다. 동면 상걸리에서 조사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진흙을 퍼다가 물에 버무려 놓고 아침에 물이 빠지면 마당에 골고루 깐다. 여기에 왕겨를 뿌린 후 두드려서 마당을 평평하고 깨끗하게 만든다. 손이나 발만 이용해서는 뭔가 부족하기에 발로 밟은 후 널찍한 나무 방망이를 만들어서 다시 두드렸다. 진흙이 마르면서 생기는 균열을 방지하기 위해 왕겨를 넣었지만, 무엇보다 많이 두드려야 했다. 강원도 다른 지역에서는 통나무를 굴려서 땅을 다지기도 하였다.

농부들은 고된 이 작업이 힘든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결같이 증언한다. 한 해 동안 힘들게 지은 농사의 결실을 수확하는 일의 시작이기 때문이리라. 마당질하는 날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하얀 쌀밥에 멀건 고깃국이라도 끓여 마을 사람과 나눠 먹는 것이 불문율이기도 하였다. 걸쭉한 막걸리 한 잔으로 그간의 수고를 서로 치하하는 일도 빠지지 않았다.

가을도 저물어간다. 방역단계는 1단계로 낮아졌지만, 아직 추운 겨울이 남아있어 마음을 쉬이 놓지 못하고 있다. 한 톨의 낟알이라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마당을 정성스럽게 다졌듯이 우리 마음속에 남아있는 희망과 다짐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춘천학연구소(262-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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