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노인복지관 ‘실버오케스트라’ 이명숙 단장

지금 우리는 코로나라는 적을 맞아 마치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가까운 사람을 만나 다정하게 눈빛을 나누며 차 한 잔 마시는 일조차도 망설여지고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먹는 일조차도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를 위해 당분간은 마음의 끈을 다잡으며 안타깝지만, 될 수 있는 한 서로를 멀리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도 계절은 어느덧 가을이다. 

푸르던 잎들이 노랗게, 붉게 물들어가고 국화꽃 빛 우러난 찻잔 속에는 살빛 낮달이 창백하다. 이러한 좋은 때, 이렇게 마냥 곱고 맑은 가을의 한가운데를 아무 사건도 없이, 어떤 애틋함이나 그리움도 없이 무심히 지나간다는 것은 얼마나 허무하고 슬픈 일인지……. 뭔가 가슴에 차오르는 처연함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던 차에 지난 10월 8일 춘천 동부노인복지관에서 ‘실버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발코니콘서트’)를 비대면으로 열었다며 친구가 보내준 영상을 보다가 혼자 중얼거려보았다. ‘가을이구나!’ 희끗희끗해진 머리와 조금은 어색한 손짓들, 그러나 표정만큼은 너무도 진지하고 결연하기까지 한 그들의 연주는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첼로!-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그 낮고 부드러운 음색이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 첼로의 주인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만났다.

2019년 실버오케스트라 제1회 정기연주회     사진 제공=이명숙

 바쁘기만 했던 삶의 걸음을 늦추고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고자 한다는 ‘실버오케스트라’ 단장 이명숙(69) 님. 그의 첫인상은 첼로 같았다. 부드럽고 정감 있고, 무엇보다도 사람의 냄새가 나는 사람이었다. “평생 공직에 있다 보니 너무 바빴어요. 늘 악기 하나는 다루고 싶은 게 꿈이었지만 말 그대로 생각일 뿐이었는데, 다 늦게, 공로연수 기간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면서 드디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첼로를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 같아요. 사람을 닮은 음색이 너무 편안하고 제 성격과도 잘 맞는 것 같거든요. 첼로를 시작한 지 8년인데, 처음 5년은 집에서만 했어요. 밖으로 끌고 나올 생각을 아예 못했지요. 맹꽁이 같지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주하고 함께 듣고 그래야 자신의 장단점을 알아내고 더 배울 텐데 그걸 몰랐어요. 그러다 같은 교회 다니는 권사님이(그분도 첼로를 하시거든요) ‘왜 집에서만 하느냐’고 하시면서 소개해 주신 데가 동부노인복지관의 ‘실버예술단’이에요. 입단해서 처음엔 회계일을 도와주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단장까지……. 시 문화재단 기금 지원으로 작년에 처음으로 정기연주회를 열었어요.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못 하겠구나 했는데, 복지관에서 ‘발코니콘서트’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정말 고마웠지요. 좀 더 일찍 예술단을 만났다면 더 많은 활동을 했을 텐데 그게 아쉬워요.”

 사진 제공=이명숙

미술을 좋아했던 그는 여고 졸업 후, 은사님의 권유로 동덕여대 미대에 입학했지만 당시 연로하신 아버지를 보면서 스스로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총무처에 취직했다. 일하면서 공부를 하리라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 후 두 아들을 출산하면서 잠시 쉬었던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대전의 성심보육원 사무국장을 거치면서 사회복지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고 방송통신대학에서 아동복지를 공부하던 그는 한림대대학원에서 사회복지 석사 과정을 밟았다. “내가 사회복지 석사로는 강원도 1호예요. 그 후에 2001년 별정공무원 5급 사무관 시험을 봤지요. 그런 식으로 계속 공부만 한 것 같아요. 이젠 공부가 지겨워요.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면 ‘성심보육원’에서 일할 때가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 우리 큰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월급날이면 우리 아들이랑 보육원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목욕탕을 갔어요. 목욕하고 나와서 아이들한테 늘 자장면을 사줬었는데, 그때 그런 것들을 보고 자라서 우리 아이들이 바르고 따뜻하게 성장한 것 같아 오히려 고맙다는 생각을 해요. 지금도 어느 골목을 걷다가도 누렇게 익어가는 호박을 보면 그때 늙은 호박을 얻어다 아이들한테 호박죽을 끓여주던 생각이 나요. 더러 티브이에서 해외로 입양 갔던 아이들이 다 자라 부모를 찾는다는 뉴스를 보거나 하면 그때 내가 인솔했던 아이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가만히 들여다봐요. 그땐 내가 서울 지리를 잘 아니까 홀트에 데리고 가는 일을 내가 했거든요. 가슴이 매우 아팠어요. 특히 함께 보육원에 들어온 형제나 자매가 헤어져야 할 경우에는……. 정말 뭐라, 말로는 다할 수가 없는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차올랐지요. 퇴직하고 나서도 그쪽 일은 계속하고 봉사도 하는데, 법원의 가사 민사 조정위원 일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혼하는 부부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가장 서글픈 건 그 와중에 양육비 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는 일을 보는 것이에요. 자식들에 관한 문제인데, 한쪽에서는 한 푼이라도 덜 주려 하고 다른 편에서는 한 푼이라도 더 받아 내려고 하는 걸 볼 때는 정말 인간의 위엄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국립박물관 찾아가는 문화공연 전 연습장면, 찾아가는 거리공연 후 기념촬영     사진 제공=이명숙
 

여러 가지 경험을 하셨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단장님의 입장에서 조금 앞서 걷는 선배, 그리고 뒤에서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선배, 아니 오빠 언니들! 살아봤으니까 알지요? 사소한 것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내려놓으면 평온해진다는 걸 늘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후배님들, 시간을 잘 다스려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이 여러분들의 삶의 지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젊은 엄마들,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은 무조건 만들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니까. 행복은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나를 내려놓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다 보면 편안해지거든요.” 

내년이면 칠순이십니다. 다시 생각하는 자신의 삶은 어떻습니까?

살만한 인생이었다! 고비는 많았지만, 그때마다 보람이 있었고, 두려운 고난이 결국은 내 삶의 디딤돌이 되었으니까요.” 그는 이제 당분간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마흔이 넘은 큰아들 내외가 수년간의 노력 끝에 결혼 14년 만에 쌍둥이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춘천 생활을 당분간 접어야 하고 ‘실버오케스트라’의 일도 잠시 쉬어야 한단다. 

“서울에서 춘천으로 내려올 때, 울면서 왔어요. 그때 어렸던 아이들도 여기서 어떻게 사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할 일이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아들한테 그랬어요. 올 때도 울면서 왔는데 다시 갈 때도 울어야 할 것 같다고……. 그러나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그리고 분명히 말해 두었어요. 일주일 내내 손주들한테 매달릴 수는 없다고요. 나도 내 시간은 필요하니까. 첼로와 함께하는 시간만은 양보할 수가 없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첼로(이젠 그 무게가 버겁지만)는 나의 황혼의 길을 함께 가야 하는 동반이며 유일한 ‘애인’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사회에서 얻은 것들을 다시 이 사회로 되돌려주는 일은 아직 남았으니까요. 첼로와 함께 그 길을 계속 걷고 싶으니까요.”

2018년 전국실버문화페스티벌 전국대회 본선 공연     사진 제공=이명숙

이 가을, 아름다운 첼로 연주곡 추천을 부탁했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추천합니다.” 

우리는 모두 지금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때로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듯 자신이 가는 길을 들여다보아야 하며 그 거울 속에서 더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 하나를 더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은 ‘거울 속의 거울’을 들으면서 떠오른 개인적인 생각이다. 비대면의 가을. ‘첼로와 함께’라면 좋겠다.

이경애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