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오 차상찬(1887(고종 24)∼1946) 선생은 춘천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잡지언론의 선구자이다. 《개벽》이라는 잡지를 주 무대로 다양한 필명으로 활동했다. 웃음을 선사하는 재미난 소재의 이야기로부터 신 문명의 묵직한 지식에 이르기까지 활동의 폭은 일반의 상상을 넘어섰다.

지난 11월 6일(금) 오후 2시에는 2020년 차상찬 학술대회가 잡지 《개벽》의 창간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을 담아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심경호 고려대 교수의 <차상찬의 인문지리지 및 세태보고서 작성>, 조형열 동아대 교수의 <차상찬의 역사쓰기-무엇을, 어떻게, 왜>, 최배은 숙명여대 교수의 <차상찬의 ‘어린이 역사 이야기’ 연구> 등 3편의 논문 발표와 이창식(세명대), 채관식(국사편찬위원회), 오세란(공주교대)의 토론이 있었다. 

공지천 조각공원에 위치한 차상찬 선생 동상

심경호 교수는 <차상찬의 인문지리지 및 세태보고서 작성>에서 인문지리지 및 세태보고서 작성이 갖는 의의에 대해 논평하고, 민속학자들의 심도 있는 연구를 요청하였다. 심경호는 차상찬이 《개벽》에 발표한 ‘조선 문화의 기본조사’를 1920년대 한국의 인문지리지로 크게 표창할 만하며, 일제의 구관(舊慣) 조사에 대항하는 의미를 지녔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차상찬은 1920년대 후반의 세태를 속사(速寫) 방식으로 보고한 잡화(雜話)들을 많이 남겼는데, 이것은 일본 야나기다 구니오의 ‘세상사(世相史)’에 앞서 선구적인 방식으로 세태를 보고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조형열 교수는 <차상찬의 역사쓰기-무엇을, 어떻게, 왜>에서 차상찬의 역사 서술에서 무엇을 썼나, 어떻게 썼나, 왜 썼는가의 세 가지 측면을 조명하였다. 차상찬의 역사쓰기는 주로 “각종 반외세 투쟁의 역사와 양반 지배계급에 대한 반란사에 주목한 것이었고, 독자와 소통하는 것을 목표로 흥미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민족사의 위대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천도교 신문화운동의 일환으로 민족운동의 주도권과 대중성의 확보를 위한 기억의 확립을 끊임없이 시도했다”고 평가하였다.

잡지《개벽》의 표지

마지막으로 최배은 교수는 <차상찬의 ‘어린이 역사 이야기’ 연구>에서 차상찬의 어린이 역사 이야기를 대상으로 그 갈래의 성격과 담화 방식 을 조명했다. 차상찬의 역사 이야기는 역사적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서 쓰였으나, 그가 주로 근거한 역사는 관청의 사관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기록한 외사나 야사였고, 대부분 외세가 침략하였을 때 용감히 맞서 싸운 구국 영웅들을 제재로 삼고 있으며, 인물의 일대기보다는 어린 시절의 일화를 중심 사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제시하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차상찬을 조명함으로써 차상찬에 대한 연구를 심화, 확대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춘천학연구소(262-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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