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시인)

춘천은 대룡산, 삼악산, 금병산, 오봉산, 그리고 자잘한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동그란 분지 형 도시다. 어느 산으로든 정상에 올라보면 도심만큼 큰 호수를 볼 수가 있는데, 속이 깊은 사발 같은 도시를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저 물은 어디로 들어와서 어디로 나가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커다란 용의 형상으로 누워 동쪽을 독차지하고 있는 대룡산은 춘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 산자락 끝 양지바른 마을 어귀에 설립한 지 100년이 된 이름도 정겨운 ‘곰실 공소’가 있다. 춘천교구의 요람 곰실 공소는 고은리 윗너부랭이라는 곳에 사는 신자 엄주언에 의해 1920년 풍수원 본당에서 분리되어 신앙 공동체로 형성되었다. 죽림 성당의 모체인, 작고 예쁘고 정갈한 공소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와 녹이 슨 종탑 아래에서 노신부와 함께 묵묵히 기도에 전념하고 있는 천주교 성지이다. 

시인은 마음 한가운데에 산 하나 치솟을 때면 공소를 찾는다. 백구는 조용히 들어선 낯선 인기척에 컹컹 짓다가 무심히 꼬리를 내린다. 시인이 성모상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비밀인 양 흘리면 공소는 뒤죽박죽 ‘망자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쥐똥 같은 시인의 슬픔을 기척도 없이 주워내곤 한다. 엄마에게 투정 부리듯 그냥 슬퍼하거나 화내거나 꽃밭 돌부리에게 툭툭 발길질이라도 할라치면 어느새 무거운 산은 아이스크림처럼 살그머니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어떤 날 시인은 자신 앞에 우뚝 선 대룡산을 본다. 마치 자신처럼 은밀히 찾아와 고해성사를 마치고 막 공소를 나서는 모습이다. 대룡산은 무슨 마음일 때 저 커다란 몸집을 접으며 비좁은 고해 실을 드나들까? 어떤 보속을 받았기에 ‘그의 목덜미에서 맑은 새소리가’ 날까? 그런 날이면 시인은 등산복 차림으로 산을 내려오는 가벼운 발걸음에서 아카시아꽃 향유를 맡는 것이다. 

 ‘고해를 한다 / 죄질이 빈약한 항목부터 밑줄을 긋는다 / 고해성사의 위력은 햇살보다 / 자생 살균력이 강하다는 것 ~ // ~ 명치 속의 죄책감이 / 성호를 따라 옮겨 다닌다 / 꽃잎 사이 겹겹이 접혀있던 죄목들 / 화르르 떨어진다 / 어제를 지운 말간 오늘이 성당을 나선다’(금시아 <첫물이라는 것> 중에서)

 고해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고 용서는 나를 구하는 것이다. 곰실 공소에는 신자이거나 아니거나, 작거나 큰 힘들고 바쁜 삶에게 ‘용서’를 넌지시 건네는 안식의 ‘흔들의자’가 있다. ‘그 백여 년의 일상은 계절이 없’어 곰실 공소에 가면 간혹 ‘잠시 허리띠를 풀’어 놓고 있는 이방인을 만나거나, ‘전나무 그늘에 누운 백구 콧잔등에 나비 한 마리 꾸벅이는 시간’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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