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술 (발도르프 교육활동가)

몇 년 전 다른 지역 초등학교에서 교사연수 강의가 있었다. 교육연구회에서 마련한 자리였고, 연구회를 이끌고 있는 교사의 교실에서 연수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시각,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빈 교실에서 담임교사는 전화통화 중이었다. 시작 시간이 되었지만, 통화는 끝나지 않았고, 10분을 넘겨서야 시작할 수 있었다. 4학년 아이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툼이 있었고, 교사는 문제해결을 위해 걸려온 두 아이의 어머니와 긴 통화를 한 것이었다. 두 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다과를 나누는 시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아이들이 싸운 것을 선생님과 엄마들이 해결하나요?” 나의 질문에 그 자리에 모인 교사들 모두 입을 모았다. “요즘은 다 그래요. 수업이 끝나도 부모님들과의 통화로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과거를 떠올려보면 친구와 싸운 것을 집에서까지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동생이 친구랑 싸워서 부은 표정으로 들어오면 “다 그러면서 크는 거다. 나중에 싸운 애랑 더 친해질걸?” 하시곤 웃어넘기셨고, 부모님의 말씀은 맞았다.

영유아기 아이들도 싸우고 다툰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싸움은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으로 보기 어렵다. 사회성을 기르고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미숙한 갈등 해결 과정이다. 두 돌을 앞둔 아기들 사이에서도 작은 다툼의 상황이 일어난다. 여러 개의 놀잇감 중에서 한, 두 개를 두 아이가 서로 잡으려 했을 때, 작은 계단 위에 서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 등 작은 실랑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교사는 관찰하며 기다린다. 아기들은 놀랍게도 스스로 갈등상황을 해결한다. 언어를 통해 대화할 수 없어도 아기들의 작은 실랑이가 큰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옆의 다른 놀잇감을 잡거나, 자리를 떠나고, 때로 양보하기도 하는 자기조절이 일어난다. 교사는 애정 어린 관심을 두고 지켜보며 자기를 향하는 아이와 눈 맞추고 따뜻하게 안아준다. 아기들을 바라보는 교사가 다툼 상황에 바로 개입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자칫 아기들끼리 손으로 상처를 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순간개입을 해야 하므로 매우 집중하여 관찰한다. 아기들의 실랑이가 발생했을 때 똑같은 다른 놀잇감을 손에 쥐여주는 것이 교사에게는 가장 쉬운 해결방법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모든 갈등상황이 순식간에 해소되는 것은 아니며, 아기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소중한 기회는 사라진다. 

조금 더 큰 아이들의 갈등상황에서도 어른이 서둘러 개입해 중재하기보다는 물리적인 싸움으로 진행되지만 않는다면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신뢰할 수 있는 성인의 대처에 따라 아이들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서 만나게 될 다양한 관계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다툼 상황에서 성인은 섣부른 판단으로 판사 역할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각각의 두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학령기를 앞둔 아이들이라면, 마음을 진정시킨 후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충분한 기회가 줄 때 스스로 바른 판단을 한다. 공감을 받아 마음이 진정되고, 서로의 사정을 충분히 들을 수 있다면 교사나 어른이 억지 사과를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진심으로 먼저 사과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영유아기의 아이들도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 주변의 성인은 이를 제한하기보다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하며 적절한 제한설정을 통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제한설정이란, 화가 나도 때리거나 던져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일관되게 알려주는 것이다. 공감받아본 아이만 친구를 공감하며 자기감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으며 수없이 많은 갈등과 조정의 상황들을 만나게 된다. 사회관계형성을 시작하는 어린 시기에 공감받고, 공감하며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은 건강한 관계 맺기 능력의 기초가 될 것이다. 성인이 된 후, 대학, 군대, 직장에서의 문제까지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 주려 한다는 이야기는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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