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배 (문화비평가)

지구 종말의 영화를 종말 이전 영화와 종말 이후의 영화로 세분할 수 있다. 종말 이후의 영화가 종말 이후 지구의 황량한 모습을 그려내기에 유토피아(Utopia)의 대립적 의미로 흔히 디스토피아(Dystopia) 영화라 부른다. 종말 이후의 남겨진 지구를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영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종말 이전 영화는 종말까지 이르는 과정을 겪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영화는 종말의 다양한 원인을 등장시켜 그때까지 사람들의 심리적 변화와 행동 양식을 표출시킨다. 

일반적으로 재난의 공간적 크기에 따라 종말 영화와 재난영화로 구분한다. 재난영화가 건물이나 도시 등에 미치는 국지적인 사건이라면, 종말 영화는 전 지구적 사건이라는 차이를 보일 뿐이다. 종말 영화와 재난영화가 주제 면에서 유사하다는 것은 인간애 또는 가족애라는 요소를 중심에 두고 영화를 전개하기 때문이다. 이들 영화는 종말 또는 재난 사건을 사실적으로 전해주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절박한 한계상황에서 인간성은 어떻게 발휘되며 인간관계는 무슨 의미일까 하는 걸 짚어보려 한다. 

영화 <그린랜드, Greenland>는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지구가 심각하게 파괴되는 상황을 설정해 놓고 있다. 적어도 관객은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이 임박해온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있다. 종말 영화들이 이런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멸망의 이유를 앞서 밝히는 것은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다. 이유 없이 갑자기 당하는 데서 생겨나는 놀라움을 주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 대신 이유는 알아도 그 시기가 점점 다가오는 데서 몰려오는 긴장감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이 있다. 

다른 이유로는 종말의 시각을 미리 설정해 놓음으로 그사이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시간을 제한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입구가 봉쇄된 터널이나 잠겨 있는 방 또는 달리는 기차 안과 같이 제한된 공간을 설정해서 인간의 심리와 행동 양식을 드러내는 것과 비슷한 영화기법이다. 제한된 공간과 한정된 시간을 동시에 설정하면 긴장감이 증가한다. 여기에 긴장감을 더욱 부추기기 위해 종말 시간을 반복적으로 알려준다. 반복만으로도 김장감의 증폭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그린랜드>는 실제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린 존, Green Zone>(2010)이나 <그린 북, Green Book>(2018) 등과 같이 비슷한 영화 제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 영화를 통해 ‘레드(Red)’가 위험이나 경고를 의미한다면, ‘그린(Green)’은 안전이나 생명 보호라는 뜻으로 사용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린랜드는 재해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의미한다. 영화 <그린랜드>는 노아의 방주 모티브를 사용하고 여기에 종말론적 요소를 결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최근 종말 영화가 크게 인기를 얻는다는 건 우리의 현재 일상이 무기력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종말 영화의 급증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나른함과 의욕 없음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자극을 주려는 시도이다. 여기에는 힘겨운 삶을 극복하기 위해 신선한 자극을 받자는 의도가 심리에 깔려 있다. 영화를 통해 지속해서 경각심을 갖고 온몸과 마음을 긴장시키려 보겠다는 애잔한 노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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