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와 전각 아우르는 이한나 작가

작년 가을 근화동 철길 밑에 컨테이너 단지가 생겼다. 그곳은 청년들의 창작활동과 사업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근화동 396 청년창업 지원센터’라는 플랫폼이다. 현재 18개의 청년창업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이곳 10호에는 다른 청년들과 사뭇 다른 포스의 주인공이 자리를 틀고 있다. 바로 서예와 전각을 함께하고 있는 이한나(39) 작가이다. 

서예가는 서예라는 글씨 예술을 하는 사람이며 전각가는 돌에다 글씨를 새긴 후 이를 종이에 찍어 표현을 하는 사람이다. 서예의 서체 중 하나인 전서체를 써서 돌에 옮겨 붙인 후 그대로 칼로 새겨내 종이에 찍어 표현한다.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해 전각이라는 통칭이 붙었지만 지금은 전서가 아닌 다른 서체와 그림을 돌에 새겨 표현하기도 한다.

전각도장 제작 모습.     사진 제공=이한나

“전각은 조각과는 다르다. 조각은 조형물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이 있지만, 전각 또한 입면의 아름다움과 도장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게 가공하므로 예민하고 까다로우면서도 다방면의 기술이 필요한 장르다.” 전각과 조각이라는 두 장르를 아우르고 있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이 작가의 답변이다. 어느 장르도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애정을 품고 있다는 말로도 들렸다.

서예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렇다고 한다. 대학원을 다니느라 학교를 오래 다녔는데 그런 이유로 자기 수양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 찾아왔다. 2010년, 처음에는 취미로 서예를 했다. 좋은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게 될 것 같아 시작했다. 서예 전체 과정 중 먹을 가는 작업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단순하게 먹을 갈고 있으면 명상하는 것처럼 마음도 차분해지고 생각도 정리됐다. 당시 화가 많았는데 먹을 갈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스르르 마음이 풀리는 경험을 했다고 회상한다.

이한나 작가가 글씨 쓰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왼쪽), 작품전시 전 작품과 함께(오른쪽)      사진 제공=이한나

“취미로 할 때나 직업으로 할 때나 글 쓰는 게 좋다.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독서를 해야 한다. 좋은 문장이나 구절을 만났을 때 이것을 표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즐겁다. 서예 작품을 하다 보면 작품에 맞는 낙관이 필요하다. 저렴한 낙관은 맘에 안 들고 맘에 드는 낙관은 너무 비싸다. 이런 필요에 따라 전각을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전각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이 과정 중에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게도 됐다.”

이 작가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전통예술을 하는 젊은 작가들이 종종 고민에 빠지는 대중과의 공감대 확장이다. 전통예술 세계가 지키고자 하는 고유의 문법을 그대로 따라가면 대중이 진입하기 어려운 장벽이 생겨 전통예술은 직업예술가만의 예술로 한정될 수 있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은 무엇일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작가는 “전각은 마음을 새긴다고 한다. 서예는 즐거운 낙서라고 한다. 어린 시절 배웠던 붓글씨를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을 끌어냈으면 좋겠다”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차분히 먹을 갈고 먹물을 내어 동심의 마음으로 가볍고 즐거운 글쓰기로 서예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근화동396청년창업지원센터 10호에서 이 작가가 운영하고 있는 ‘이정글씨’를 노크해보자.

정주영 시민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