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한(고탄리 숲지기)

오늘은 산에 가지 못한다. 개들이 와서 어서 산에 가자 현관문을 긁어댔지만, 산행은 포기했다. 집 주변 산들이 희미하게 보일 만큼 지독한 누런 먼지에 둘러싸여 있고 흙먼지 냄새까지 나고 있어 그 먼지 속의 중금속 등 각종 화학물질이 가득한 공기를 호흡하며 산에 오른다면 금방 자동차 공기 여과기처럼 폐에 먼지가 잔뜩 낄 것 같았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거나 어렵게 숨을 쉬고 사는 폐 질환 환자들의 고통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생각하니 발길이 절로 멈췄다.

검은 스모그는 죽음의 장막같다. 특히 동틀 무렵 서울의 북한산 관악산 등의 산 하단 부분을 싸고 있는 검은 연탄색 같은 띠는 온갖 산업 시설과 자동차 배기가스에서 나온 이산화탄소들과 암 유발 성분들이 섞인 것으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다. 우리들의 생명과 생태계를 다 망가뜨리고 있어 인간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요사이는 은회색 바탕의 차 보닛 위에 등유 등을 연소시킨 연통에서 나올법한, 눈 크기만 한 검댕이 떨어져 있고 몇 방울의 빗방울에도 차 유리에 흙 자국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보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나라의 환경을 두려움으로 확인하고 있다.

27년 전 이런 환경을 피해 서울을 떠났는데 이젠 이 산골짜기까지 그때 그 호흡기 질환 인자들이 찾아왔고 더 많아졌다. 이젠 어디로 쫓겨가 살까?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알래스카, 스위스 등 지구상의 청정 지역이 쭉 생각나고 그 나라들이 부럽다. 왜 우리나라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과 공기를 제공해주는 하늘의 은혜와 자연의 섭리를 가르치지 않을까? 자기가 마시는 물을 마구 오염시켜 화학약품으로 정제해 먹고 아직도 시골에선 유독물질을 내뿜는 비닐류의 쓰레기를 소각해 산성비가 내리게 하고 있다. 자신이 사는 지구를 휴지통인 양 생각하는 무지를 깨우치게 하지 않고 사람이라면 넘어서는 안 되는 가장 기본적인 도리와 도의를 가르치지 않을까? 이게 사람 사는 세상이랄 수가 있을까? 오늘 아침의 대기보다도 더 억장을 막는듯하다.

티브이 특강을 틀어 놓고 실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그리고 벽에다 대고 팔 스트레칭을 하고 팔굽혀 펴기를 한다. 이제 정비와 보수를 하며 스트레칭 등으로 윤활유를 쳐야 하루를 안전하게 시작할 수 있는 세월을 살고 있다. 30년 넘게 이 게으르고 업보 많은 육신을 데리고 산에 다닌 관절도 이제 엄살을 피운다. 그래서 아주 살살 달래어 산엘 간다. 육신과 환경이 이리 변하니 마음인들 오죽하겠는가? 열어 보지 못해서 그렇지 이끼 끼고 때 묻고 가관일 것이다. 기능도 약해져 아무것도 아닌 것에 물 묻은 센서처럼 오작동해 과민 반응을 일으켜 울컥 눈물이 나오려 한다. 늙으면 아이 된다는 말이 틀림없다. 

나무도 조용히 다 주어 버린 몸으로 조용히 좌우로 흔들며 참선에 들었고 풀들도 청춘은 다 보내버리고 누렇게 말라 버린 영혼인 양 바람에 서걱거리고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없다더니 초겨울이면 유리알처럼 맑은 하늘과 살얼음처럼 청량해 심호흡이 달던 우리나라 자연환경이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오늘처럼 하늘마저 마귀의 거대한 검은 날개 그림자처럼 독가스 대기가 어떻게 덮이게 되었을까? 옛날에 수많은 생물이 멸종한 지구 빙하기 때의 하늘이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두렵고 끔찍하다. 인간들이 자신의 무덤을 파고 멸망의 길로 간 탓이다. 그렇게 자기들 무덤의 뚜껑을 스스로 덮고 모든 생명체가 사라진 후에는 지구가 다시 태어날까? 빙하기 후처럼, 노아의 방주처럼.

대기질이 좋지 않은 이런 날은 주위마저 어두워 한낮도 저녁처럼 침침한 데다 산소가 부족한 듯 그냥 피곤하고 졸리기만 해 동면에 들려는 짐승 같아진다. 그러나 이 재앙의 환경 속에서도 잊고 잊히기 시작하는 겨울 문턱처럼 마냥 추락하기만을 예비하고 있어서는 안 되겠다. 한 해가 저무는 것은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제발 자연환경이 되살아나도록 빌어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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