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이와 산책을 나가면 다양한 종류의 개들을 만나곤 한다. 말티즈나 푸들, 치와와 등 흔하게 볼 수 있는 반려견이 대부분이지만 때때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희귀한 견종을 만날 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견종을 발견하게 되면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구경을 한다.

춘삼이로 말할 것 같으면 흔하디흔한 푸들이다. 그러니 행인들의 눈길을 그다지 사로잡는 편은 아니다. 이따금 새까맣고 곱슬거리는 털 때문에 “에구, 깜작이야! 흑염소인 줄 알았네!”라는 재미있는 반응이 있기는 하지만.

이따금 사람들은 춘삼이를 흑염소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왼쪽), 흑염소(오른쪽, 출처=서울동물원)
이따금 사람들은 춘삼이를 흑염소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왼쪽), 흑염소(오른쪽, 출처=서울동물원)

며칠 전 산책을 하다가 정확한 종류는 알 수 없지만 척 보기에도 대단히 훌륭한 혈통임에 틀림없어 보이는 대형견을 발견했다. 길고 우아한 다리에 새하얀 털이 잘 다듬어져 찰랑거렸다. 한참동안이나 구경을 하다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훌륭하다는 것과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별개라는 것이었다. 그 개는 넋을 놓고 볼 만큼 멋진 개였지만 사랑의 대상은 아니었다. 내가 사랑하는 개는 평범한 푸들인 춘삼이다. 그것은 《어린 왕자》의 여우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 정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스스로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가치로 대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서도 말이다. 평범한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자신에게 정을 붙이는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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