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천 (춘천두레생협 이사)

사나흘 간격으로 나오는 레고랜드 뉴스에 질린다. 시민들은 수년간의 부조리한 과정에 분개하기도 지쳤다. 어쨌든 공사판은 벌어졌는데 개장마저 계획대로 안 된다니, 도대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황망하고 엉망일 수도 있을까 싶다. 

지자체가 발표하는 개발사업은 너무도 많다. 대규모 국책사업일 수도 있고, 지자체의 독자적인 기획일 수도 있다. 사기업의 개발사업에 호응하는 경우도 있고, 이것저것 섞고 묶은 복합사업일 수도 있다. 장기화 국면인 코로나 사태로 인해 빈도수가 좀 잦아들었을 뿐이다. 

단계도 중요하다. 지자체장의 희망적 공약 수준일 수도 있고, 연구용역 정도는 끝난 계획일 수도 있다. MOU 단계일 수도 있고, 예산확보를 눈앞에 둔 경우일 수도 있다. 예산도 초기 일부 예산인지 전체 예산인지, 여러 타당성 검토를 정상적으로 밟기는 하는지도 중요하다. 

경우의 수는 복잡해서 전문가도 파악이 어렵다. 문제는 이 복잡함이 극도로 단순화되어 시민들에게 전달되는 패턴이다. 정치·행정·이해당사자들이 보도자료를 유포하면 언론은 그대로 받아 보도한다. 개발사업 보도의 공통 패턴은 2가지다. 욕망을 포장한 희망으로 가득하며, 부풀린 일자리 창출 및 경제효과로 마무리된다. 결국, 시민들은 진실과 멀어지게 되고, 딱 한 부류만 진실을 안다. 이득을 얻을 사람들만.

나는 개발 반대론자가 아니다. 토건이든 미래산업이든 필요한 건 필요하다. 그런데 바로 그 필요가 중요하다. 공적 개발이 공적 자원의 고른 분배에 이바지하는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분배 과정에서 당연히 이해관계는 상충한다. 난데없이 뒷산에 송전탑이 들어서거나 사유재산이 수용되는데 명분은 공익이라면, 이해관계의 조정은 쉽지 않다. 

더 어려운 조정이 있다. 이익의 침해를 주장하는 편이 없는 경우다. 지겹지만 레고랜드를 예를 들면, 구석기 시대 조상님들이 이래도 되는 거냐고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강원도에서 개발사업은 자연을 벗겨내고 침해한다. 산은 이런 일에 무심한 듯 항상 말이 없고, 말 못 하는 동식물과 미물들은 민원을 넣지 못한다. 

비단 개발뿐만이 아니다. 조정은 상시로 선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정치다. 그래서 우리는 위정(委政)을 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개인에게든 조직(정당)에게든 정치를 맡기거나 정권을 부탁한다. 위임을 받은 사람은 위정자(爲政者)라고도 불린다. 교회 장로들이 기도할 때 듣게 되는 예스러운 표현이다. 주여, 위정자들을 축복해 주시옵고….

순서는 명백하다. 권한이 있는 사람(유권자)들이 정치를 맡긴(委) 다음에, 비로소 정치는 행(爲)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선거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일은 신중하고도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진심으로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선거가 대부분이라는 데, 우리 정치의 비극이 있다. 정치조직인지 패거리인지 헛갈린다. 

자, 누구에게 위임할 것인가? 원론적으로 따지면, 우리는 식견(識見)이 있는 사람에게 위임해야 한다. 식견은 학식과 견문이라는 뜻이며,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이르는 말이다. 지적 능력(intelligence)과 통찰력(insight)이다. 이런 자질을 가진 사람(집단)이 조정의 능력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많은 부류가 욕망을 숨긴 채로 위정자들에게 어필하게 된다. 매우 세련된 언어일 수도 있고(정책포럼 같은), 아주 거친 언어일 수도 있다(집회시위 같은). 우리는 조정권을 위임한 상태다. 이제 기대할 것은 위정자의 식견이다. 지적 능력이 모자란 무지한 위정자가 문화의 가치 따위를 읽어내지는 못할 것이다. 통찰력 없이 무정한 위정자는 자연의 음성을 들을 영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식견을 어떻게 아는가?

결론이다. 우리는 식견 있는 위정자에게 위임하고 싶다. 그러니 앞으로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여, 미리 당신의 식견을 밝혀라. 지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여, 지금 당신의 식견을 밝혀라. 무엇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래서 내다보는 바는 무엇인지 밝혀라. 온갖 기회에 온갖 매체를 통해 밝혀라. 

식견을 드러내는 일은, 당신의 말과 글에서 당신이 주어가 되는 일이다. 어디 무슨 행사에 참석했는지가 아니다. 어설프게 자화하고 유치하게 자찬하는 일도 아니다. 지역 정치의 발전? 당신이 당신의 식견을 시민들에게 온전히 드러내는 일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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