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절기, 소설

소설은 양력으로 11월 22일 또는 23일 무렵이다. 소설이라는 이름은 이때를 즈음해 첫눈이 내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이 내릴 정도의 추위가 시작되기 때문에 겨울 채비를 한다. 그러나 한겨울에 든 것은 아니고 아직 햇살이 비치기도 해서 소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균 기온이 5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된다.

1872년 지방지도에 그려진 손돌목(손석항) 일대.

“초순의 홑바지가 하순의 솜바지로 바뀐다”라는 속담이 전해질 정도로, 소설은 날씨가 급강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설 전, 김장을 하기 위해 서두른다. 또 농사철은 지났지만 농가에서는 월동 준비를 위한 잔일이 남아있다. 시래기를 엮어 달고 무말랭이나 호박을 썰어 말리기도 하며 목화를 따서 손을 보기도 한다. 또 겨우내 소먹이로 쓸 볏짚을 모아두기도 한다.

대개 소설 즈음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진다. 이때 부는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하고, 이때 갑자기 생긴 추위를 손돌추위라고 한다. 특히 뱃사람들은 소설 무렵 손돌바람을 무서워해 배를 잘 띄우려 하지 않는다. 손돌바람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손돌바람은 손돌풍, 혹은 손석풍이라고도 한다. 고려 때 전란이 일어나 왕이 강화도로 파천을 가게 되었는데, 배가 통진과 강화 사이, 이후 손돌목이라고 불리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큰 풍랑이 일어 위험하게 되었다. 뱃사공이었던 손돌이 왕에게 일단 안전한 곳에 쉬었다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왕은 파천하는 처지였기 때문에 손돌의 쉬어가자는 말을 의심해 반역죄로 몰아 참살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 뱃길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다. 왕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왕의 말을 베어 죽은 손돌의 넋을 제사하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에 도착했다. 그 뒤 매년 이날이 되면 날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인다고 하여 이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손돌의 무덤이라 전하는 곳이 현재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 있다.

중국에서는 소설 후 5일씩을 묶어 3후로 나눴다. 초후에는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중후에는 천기는 오르고 지기는 내리며, 말후에는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한다.

홍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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