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천 기자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춘천의 초등학생들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며칠 전 신문사 사무실에서 한 차례 파문을 일으켰다. 춘천과 맥이 닿는 인터넷 카페를 비롯해 온라인 여기저기에 퍼져있는 모양이었다. 온라인에 뜬 글을 읽어보니 코로나에 일단 걸리면 완치가 돼도 왕따를 당하기 때문에 아이들 스스로 밖에 나가기를 기피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화를 나누던 직원 누군가가 “부모와 사회가 잘못 가르친 탓이 큰 것 같다”고 말했고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사회현상을 아이들의 ‘악’으로 돌릴 수 없다는 전체 맥락은 수긍하면서도 엄밀히 따지면 ‘잘못 가르친 탓’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동물의 차원에서 살펴보면 어떨까? 동물 집단에서 전염병이 돈다면 건강한 동물들은 병든 동물을 가차 없이 버릴 것이다. 몇몇 개체를 희생함으로써 멸족을 막아내는 공리주의를 선택하는 것이다. 동물 수준에선 나름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회적 방역을 펼치는 셈이다.

문제는 인간에게도 동물의 심리가 남아 있다는 점이다. 전염병 감염이 의심되는 자, 무리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는 자를 배제시킴으로써 종족을 지키겠다는 본능 말이다. 지난 2차 대유행 때도 이런 종족유지 본능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지역을 방문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에게는 “이 시국에 놀러 갔다 왔나”, “수상한 집회에 참석한 것 아니냐”, “특정 종교인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확진자들이 주변으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SNS나 언론보도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춘천시정부도 이러한 문제를 감지하고 코로나19 발발 초기와는 달리 확진자의 개인정보를 최대한 보호하려 노력하고 있다. 춘천시재난대책본부와 춘천시보건소도 ‘확진자에 대한 세심한 보호와 배려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사회적 방역이고 ‘마음백신’이라며 시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같은 수준일 수는 없다. 마음 한 편에 두려움에 대한 동물적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 해도 사람은 교육을 통해 이성의 힘으로 두려움과 맞서는 법을 배운다. 사회적 약자를 포기하고 배척하는 야만의 방법이 아니라, 거두고 보살피는 문명의 방법을 배운다. 비록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꼿꼿이 하늘을 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 대화의 화두였던 초등학생 확진자 왕따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이성과 교육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초등학생들은 “잘못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못 배웠”기 때문에 확진자 친구를 따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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