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민섭 (정의당 춘천시위원회 위원장)

태안발전소 고(故)김용균 노동자 사망사고, 이천 물류센터 화재 참사,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택배 노동자 과로사, 삼척 삼표시멘트 추락사고, 속초 승강기 추락사고, 춘천 타워크레인 자재 추락사고…. 연간 2천여 명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가 “잘 다녀올게”를 약속하며 출근하였지만 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대한민국은 21년째 OECD 국가 중 산재 사망률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이는 열악한 노동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이윤추구 만을 위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2013년부터 5년 동안 산업재해로 노동자가 다치거나 숨진 경우, 책임자 10명 가운데 9명 이상이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벌금 액수도 개인과 법인 모두 백만 원에서 5백만 원 사이가 가장 많았고, 3천만 원 이상은 각각 0.2%, 0.5%에 불과했다. 2008년 이천 냉동 창고 화재 당시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지만, 기업이 낸 벌금은 고작 2천만 원으로 노동자 1명의 죽음은 벌금 50만 원에 그쳤다.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고작 몇 푼 벌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라면 21년째 산재 사망률 1위는 당연한 결과이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 책임이 있는 청해진 해운은 과실로 선박 기름을 유출한 점에 대해 해양환경관리법 위반으로 고작 벌금 1천만 원을 선고받았고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었던 해양수산부의 공무원들은 정직이나 감봉 등의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일으킨 옥시레킷벤키저 역시 대표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허위 광고 표시에 대해서만 1억5천만 원의 벌금을 냈다.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얻는 이익보다, 재해를 일으켰을 때 받는 불이익이 적다면, 기업의 철저한 안전관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의당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업재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처럼 시민재해 모두에 적용된다. 기업의 대표이사나 높은 자리의 공무원과 같이 책임 있는 사람들이 사람이 죽지 않도록 최소한의 조치를 마련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020년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이유이다. 

안전의무 위반으로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참혹한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해 국민은 10만 국회 청원을 통해 뜻을 모았고 이미 3당(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대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였다. 3당 모두 관련 법안까지 발의하였지만 입법의 문턱에 와서 멈추어 버렸다. 174석의 힘을 가진 집권 여당은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고 원내대표는 “내부적으로 법안의 완결성을 위해서 조정이 필요하다”라며 노골적으로 발을 빼,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해이고 청년 비정규직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2주기가 되는 해이다.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 시민이 죽임을 당해야 국회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나설 것인가? 전태일 열사가, 수많은 김용균 노동자가 묻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더불어민주당은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잘 다녀올게”라는 당연한 약속이 꼭 지켜질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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