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규 (강원교육연구소 교육국장)

신석정의 <역사>에서 ‘역사’라는 낱말이 제목에서 한 번, 2연 “달래꽃의 긴긴 ‘역사’” “달래꽃같이 위대한 ‘역사’”에서 두 번, 모두 세 번 나온다. 이 단어는 제목에서뿐 아니라 핵심 시어 ‘달래꽃’과 함께 출현하므로 더욱 정확하고도 적확하게 발음해야 한다. 이 시어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신문 기사에서 제목에 오타가 나온 정도만큼이나 심각한 사태다. 똑같은 오타 실수라도 본문 기사에서라면 사태의 심각성이 다소라도 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체의 상호부터 틀리게 쓰거나, 기사 제목부터 오류를 초래해선 안 될 일이다. 첫인상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발음한다면, 그 효과는 매우 크다. 왜냐하면 시의 핵심어를 잘 읽는 것은, 하나의 단어만 정확하게 발음한다는 인상만 아니라, 시어 전체를 제대로 낭송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역사’라는 단어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우선 역사라는 단어의 두 음절은, ‘강약’으로 읽어야 한다. 서울대 언어학자 김현복 교수의 표현대로라면 ‘땅디’처럼 강약을 나타낼 수도 있고, 서양 음계로 치자면 개개인의 음역에 따라 ‘파미’ 혹은 ‘솔파’쯤이 될 것이다.

  모든 말소리는 그 소리의 ‘세기’가 똑같지 않다. 세기가 강한 것과 약한 것이 있는데, ‘역사’에서 강세는, 첫음절 ‘역’에 있다. 강세의 원리 중에 받침이 있는 폐절음과 단모음으로 이루어진 낱말에서는, 받침이 있는 음절에 강세가 놓인다. 강세가 놓인 음절은 약간 길고, (물론 장음의 음절만큼 길지는 않지만….) 강세가 놓인 음절의 앞뒤 음절은, 조금 짧아진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니까 ‘역’은 강하고 상대적으로 살짝 길며, ‘사’는 세기가 약하고 살짝쿵 짧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사’는 [싸]로 발음한다. 우리말은 ‘역사’처럼 앞 음절의 받침 [ㄱ] 뒤에 [ㅅ]이 오면, 그 뒤음절이 ‘된소리’로 발음되기 때문이다. ‘경음(=된소리)화 현상’이다.

그러면 이제 흔히 나타나는 오류들을 하나하나 톺아보자.

우선 두 음절의 강약을 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확실하게 강약으로 읽어야 한다. 다만, 우리말의 악센트는 약하기 때문에 조금만 세게 읽어야 한다는 점에 주의하자.

다음으로는 두 음절의 길이가 동일하거나, 혹은 짧아야 할 둘째 음절 ‘사’를 길게 [사아]처럼 발음해 외려 더 길게 읽는 경우까지 있다. 두 음절에서 한 음절이 길어지면, 그 뒤에 오는 둘째 음절은 딱 그만큼만 짧아진다. 예컨대 두 음절을 두 박자로 봤을 때 ‘없다’에서 ‘없’은 ‘장고모음’으로 [ˈ업ː따]처럼 ‘없’을 길게 읽고, ‘없’의 음절이 길어지는 만큼, 딱 그만큼만 ‘다’를 짧게 읽어야 한다. 소리의 길이는 앞뒤 음절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호간섭의 영향’을 무시하고, ‘다’를 한 박자의 길이 그대로 읽는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 ‘역’과 ‘사’를 띄어 읽는 오류까지 보인다. 이는 치명적이다. 휴지는 단어 내부에서는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호케트(Hockett)는 단어를 정의하길 “휴지가 가능한 자리, 그 사이에 묶인 모든 분절의 단위”라고 했다. 휴지의 개념은, 이렇게 단어를 정의하는 1차 개념이다. 니다(Nida)의 말처럼 단어는, 형태론적으로나 음운론적으로나 그 결속력이 매우 강한 것이다. 정상적 발화에선 아무리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고 할지라도 단어 내부에 휴지를 둘 순 없다. 현실의 발화에선, ‘학교’를 [학#교]나, 합성어 ‘집안’을 [집#안]처럼 휴지를 두어 말하지 않는다. 전달력이 떨어지고,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시낭송에선 그 어떤 시어도 사소하지 않다. 만일 우리가 그 어떤 것을 사소하게 취급하게 한다면, 그 사소함이 곧바로 우리를 사소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다. 여기서, 이제, 우리, 과감하게 벗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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