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환(춘천시농업인단체협의회 회장)

계절적 농한기에 접어든 연말에 춘천 농민들의 ‘춘천시 농업 회의소’ 준비가 한창이다. 지난 2018년 춘천이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농민단체, 지역농협, 시를 중심으로 추진단을 구성하여 추진한 지 2년여가 지나고 있다. 농업회의소는 농민을 비롯한 농 관련 단체 그리고 시가 함께 토론과 논의를 통해 농업정책과 사업을 수립해가는 민관 협치 기구이다. 현 시장이 춘천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당사자(시민)가 주인이 되어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표명한 이후 농업계에서 추진되고 있는 당사자 조직이다. 전국적으로 40여 시·군에서 이미 운영되거나 추진하고 있는 데서 볼 수 있듯 그간 행정 중심의 농업정책과 사업을 농민이 참여하는 협치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에 대한 춘천시 농민들의 기대가 높다.

지금까지 농업정책은 늘 농민들을 대상화해왔다. 당사자인 농민들을 배제한 채 농업정책을 만들고 시행해왔다. 형식적으로는 각종 위원회에 농민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요식적인 의견수렴 절차에 불과했다. 이번에 만들어지는 춘천시농업회의소는 다행스럽게도 농정의 협치기구로서 민과 관이 함께 농업정책 수립에 참여할 수 있게 방향을 잡고 있다. 참여 단위는 농민 개인과 14개 농민단체, 그리고 9개 지역의 농축임업 협동조합이다. 개인 회원은 11월 30일 현재 6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춘천시 농업인구는 약 1만2천여 명인데 농업을 주 경제 수단으로 하는 농업인구를 절반 정도로 추정할 때 현재까지 농업회의소에 가입한 농민 수로는 춘천 농민을 대표하기에 부족하다.

하지만 시 조례에 근거해서 추진되고 있는 춘천농업회의소는 제도적·정책적인 측면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첫 번째로는 농업정책과 사업 수립 과정에 농민이 참여함으로써 민·관 농정 협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 정책 당사자이지만 지금까지 농업정책 수립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던 농민들의 참여를 보장해줄 것이다. 행정에서 수립된 사업을 수동적으로 신청하고 선정되어 추진하는 역할만 하지 않게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역할이다. 이렇게 될 경우 농업정책이 현장과 동떨어진 채 수립돼 현실의 요구와 괴리가 발생하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실제 농민이 사업수혜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형식적으로는 각종 위원회에 농민들이 참여하지만 논의 과정이 관 일방적으로 운영되어 제 구실을 하지 못해 온 지금까지의 관행이 고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두 번째로는 범 농업계가 단일창구로 농정의 협치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이다. 농촌 지역에는 수많은 농 관련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단체가 농정수립과정에 다양한 요구를 함으로써 단체중심의 사업추진과 수혜로 많은 농민이 사업으로부터 소외되어 행정지원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돼 왔는데 이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는 조직화하지 못한 중·소가족농의 농정참여를 확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농업이 품목으로 전문화, 규모화되고 농정수립에 반영되면서 농업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 가족농의 농정참여와 농업정책의 다양성이 축소되었다. 농업회의소는 기본 참여 단위가 개별농민이어서 다양한 요구들을 모아 낼 수 있다. 이를 위해 활동의 중심을 분과위원회 활동으로 잡고 있다. 농정, 원예1, 원예2, 수도작, 축산, 과수, 친환경, 산림, 여성, 친환경, 청년 등 11개 분과로 구성함으로써 다양한 의견수렴과 공론화를 통해 농업·농촌의 전반적인 요구를 수렴하도록 했다. 그간 농정에 소외되어온 다양한 품목과 계층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된 셈이다.

농민뿐만 아니라 농 관련 단체 및 농·축협이 참여함으로써 범 농업계의 농정추진 주체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 그러나 농업회의소가 긍정적인 기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 불신하듯 또 다른 관변조직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져볼 수 있다. 지금껏 많은 농 관련 조직이 행정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탓에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아 농민들에게 불신을 준 것도 사실이다. 농업회의소가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운영에 있어서 농민의 주도성을 유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조직구성단위가 역할을 잘하기 위한 결의와 준비가 요구된다. 의결 단위로서의 대의원의 역할, 운영단위인 이사회의 역할, 사업단위인 분과위원회의 역할, 조직 기반인 읍·면별 지역조직의 역할을 얼마나 갖추는가가 문제이다. 이제 농업·농촌사회에 새로운 실험이 추진되는 만큼, 이 제도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시민과 행정이 관심을 모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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