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아 (시인)

코로나 19 확진자가 전국적으로 빠르게 번져가고 있다. 천혜의 청정지역 춘천도 예외는 아니어서 거리 제한등급이 높아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전쟁이 따로 없다. 전 세계적으로 모든 상황이 악화되어 모두 힘들어한다. 이제 겨울의 시작인데. 벌써 아지랑이 피는 봄이 그립다. 하여 나는 코로나 퇴치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박기동 시인의 시 <입춘대길>을 불러오기로 한다. 

첫눈이 왔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고난을 지그시 꼭 끌어안아 주는 함박눈이었다. 웬일인지 첫눈이 풍성하면 풍년도 들고 복도 넘치고 소원 성취할 것 같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인데도 무례하게 카톡방을 두드렸다. 내가 주는 것도 아닌 복을 남발하며 애들처럼 첫눈의 설렘을, 멀고 가까운 지인들과 나누었다. 

‘봄내에서 한 십 년 살다 보면’ 흰 눈이 날리건 빗물이 쏟아지건 ‘물에서 나는 냄새를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니 간혹 이런 새벽의 망종 또한 예사롭고 또 그저 용서된다. 내가 봄내에 정착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렇게 또 한 이십 년이 지나면 성급하게 때도 아닌 ‘삼월이’를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수많은 외지인은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 그리고 추억 가득 담고 있는 호수를 찾는다. 그러나 봄내 골에 사는 누군가에게는 ‘명주실’이나 ‘살얼음판’ 같은, 정말 ‘손잡을 데 마땅치 않은’ ‘안개밀집지역’이자 ‘위수지역’이기도 하다. 

박기동 시인의 고향은 강릉이지만 생활공간인 춘천에서 시인은 자신의 어린 별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은 완강하게 그를 현실에 붙들어 놓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에 반해 시인은 일찌감치 ‘내 생에 이런 계엄령 따위가 해제될 수 있을까’라며 삶에 대해 수긍하는 자세를 보인다. 서툰 희망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직시하고 고통에 몸을 던지겠다는 시인의 긍정적인 자세는 자신의 방어기제이다. 곧 삶의 궁극적인 치유의 처방전이란 자연에의 순응, 귀의인 것이다. 그렇기에 시 ‘입춘대길’은 ‘거부할 수가 없’는 어둠 속에서 태어나 ‘안으로부터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희망으로 돌아온다. 시인이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삼월이의 소식’을 기다리는 이유이고, 그 기다림은 봄내 골이기에 가능하다.

시인은 평생 체육 위에 시를 병행하며 살았다. 시와 체육, 어쩌다가 이들은 한 몸이 되었을까? 시 ‘입춘대길’은 유리 같은 삶을 건너는 중에도 마음이 따듯하고 편안해진다. 그 안에는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소년으로 살았다!는’ 시인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한다거나, 스스로를 ‘불량시인’이라 일컫는 시인만의 특별한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시인이 읽는 가장 서정적인 춘천시詩, 힘껏 던질수록 강한 힘으로 되돌아오는 부메랑처럼 계속될 것이다.

코로나19의 등장, 벌써 한 해가 지나간다. 2차 감염이 점점 극성을 부리고 한파까지 몰려온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모든 생활의 태엽이 방향과 속도를 잃어버린 건 아닐까? 일상의 붕괴로 인한 위기감은 조금 두렵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저 임시방편의 치유가 아닌 완전한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는 더 강력한 병증을 앓아야 한다고 했던가. 삶이 시험하는 고통이란 예방접종, 더는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