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그림 쓰는 아이들, 글 그리는 아이들》
초등생 22명·중등생 1명…수필·단편소설·그림 모음
1.11.까지 ‘파피루스’ 전시…독립서점·도서관에 입고

독립출판은 이제 더 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기성 시스템을 통하지 않고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펴낸 독립출판물을 쉽게 접할 수 있고 그 중엔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스타작가로 명성을 얻는 이들도 있다. 

그림소설 《그림 쓰는 아이들, 글 그리는 아이들》은, 글과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자기를 표현해온 아이들이 펴낸 독립출판물이라서 의미가 크다. 작은 화실 ‘수아트’의 아이들 9명(황류아·김서현·홍지유·김예준·이민채·이주호·김아윤·이룬이·김준현)과 독서문화클럽 ‘더북클럽’의 아이들 14명(김긍솔·서동윤·한승유·이제형·유태헌·허준우·박시우·유현진·김민성·서동완·김예준·이진형·황수민·김예나)은 코로나19로 학교도 가지 못하고 추억을 만들지 못하자 지난해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서로의 그림과 글을 메일로 주고받으며 책을 완성했다. 수필과 단편 소설 60여 편과 미술작품 60여 점이 수록됐다. 그림과 글은 독립적인 창작물이며 서로의 작품에 대한 리뷰이다.

《그림 쓰는 아이들, 글 그리는 아이들》

책은 사계절로 챕터를 나누어서 그림과 글을 주제와 장르별로 배치했다. 봄과 겨울은 단편소설로 채워졌다. 존재에 대한 의문, 자전적 성장이야기부터 그로데스크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판타지와 첩보물 까지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다. 여름과 가을은 학교·친구·가족·음식·계절 등 일상의 경험과 감상을 써내려간 수필이 자리했다. 덕분에 어른들이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요즘 아이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책이 만들어진 과정은 이런 식이다. ‘수아트’아이들이 그림을 그려서 ‘더북클럽’아이들에게 메일로 보내면 각자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해서 그림에서 받은 영감을 수필과 단편소설로 완성했다. 반대로 수필과 단편소설을 받아 읽은 아이들이 글에서 받은 영감을 그림으로 완성하는 두 방법으로 진행됐다.

홍지유는 여러 글 중 도시의 쓸쓸한 가을에 대한 감상을 담은 김예나의 수필 《가을》에 끌려서, 그 감상을 수채화로 표현했다. 김예나는 “지유가 나의 수필 《가을》을 읽고 수채화 〈가을바람을 타고 전해지면 좋겠어〉를 그렸는데 가을의 쓸쓸함을 정말 잘 표현했다. 지난 9월부터 글쓰기를 시작했다. 소설과 과학서 등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글쓰기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경험을 통해 글 쓰는 재미에 빠졌다.”

 김예나의 수필 《가을》전문

홍지유는 “예나 언니가 내 그림을 좋아해서 다행이다. 반대로 예나 언니는 나의 그림 〈소녀〉를 잘 이해하고 기이한 단편소설 《소녀》를 잘 써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코로나가 사라지면 꼭 만나고 싶다. 만화가가 꿈인데 이번에 큰 도움이 됐다”라고 말한다. 다른 아이들도 책을 만들면서 훌쩍 성장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를 기획한 이수현 화가와 김보람 독서교육가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제약하는 간섭을 하지 않으며 길잡이 역할을 수행했다. 이 화가는 “아이들이 기대한 것 보다 더 많이 배우고 성장해서 놀랍고 보람이 크다. 예전에는 습관적으로 풍경이나 정물화를 그렸는데, 글을 읽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이 더 깊어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걸 확인했다.” 김 독서교육가는 “한 발 떨어져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다양한 생각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그림을 보고 글을 쓰자, 더 다양한 소재도 등장하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등 많이 성장했다”라고 말하며 기뻐했다.

홍지유가 수필 《가을》 을 읽고 그린 수채화 〈가을바람을 타고 전해지면 좋겠어〉

과정이 즐겁기만 했던 건 아니다. 아이들은 본인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글과 그림이 탄생하자 혼란스러움도 겪었다. 하지만 혼란을 지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가 창작의 주체라는 것을 이해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도 자랐다. 이런 교육효과라면 향후 보다 많은 곳에서 교육프로그램으로 따라해 볼 만하다.

초판 70권은 이미 다 팔렸고 50여권을 더 인쇄할 예정이다. ‘파피루스’에서 1월 11일까지 전시와 판매가 진행 중이고, 이후 지역 독립서점과 도서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서로의 얼굴도 모르고 소통하면서 책을 펴낸 아이들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흥미롭고 대견하지만 안쓰러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 23명의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손잡고 인사하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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